실학과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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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2.21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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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 속의 과학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축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종래의 성리학적 자연인식 체계를 비판적이고 자유분방하게 수정해 재정립한 새로운 체계이고, 또 하나는 17세기 초 이후 중국을 통해 수입한 서양과학의 새로운 지식정보이다. 조선후기의 실학자들은 전통적 자연지식과는 상당히 다른 서양과학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이지 않았으며, 그들이 새로이 정립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성리학적 인식체계에 기반해 선택적으로 수용했다.
실학자들이 접하고 선택적으로 수용한 서양과학 중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천문학 지식이었다. 조선의 실학자들이 서양의 천문학 지식을 접한 통로는 전적으로 중국에서 수입해 들여온 한문으로 변역 정리된 서양과학 서적이었다. 17세기 초 이후 주로 사신 일행에 들여온 마테오 리치의 『건곤체의』와 같은 서양 천문학 책을 통해서 조선의 유학자들은 새로운 천문학 정보를 얻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조선 유학자들이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지구설 이었을 것이다. 수 천년 동안 믿어오던 땅이 평평하고 모나다는 전통적인 관념이 부정되고, 인간이 살고 있는 땅은 공과 같이 둥글어 저 반대편 쪽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가히 혁명적인 내용이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객관적인 천체 운행의 계산과 같은 천문학은 실용적인 차원에서 큰 거부감 없이 수용되었다. 1644년에 중국에서 시행되기 시작한 서양식 역법 시헌력을 곧이어 수용하기 시작해 불과 10년 만인 1653년에 독자적인 자체 노력과 능력으로 시헌력으로 개력할 수 있었던 것이 그러한 사정을 잘 보여준다. 또한 서양식 천문도의 도입도 비교적 적극적으로 수입되었다. 1623년에 제작된 아담샬의 『적도남북양총성도』가 1631년에 수입되었으며, 1723년에 제작된 쾨글러의 『황도총성도』는 1742년에 수입되었다. 이후 관상감에서는 그것들을 모사해 사용했다. 또한 민간에서도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목판으로 제작해 널리 보급되기도 했다. 천문학 전문가가 아닌 대부분의 조선 유학자들이 천문학 서적이 아닌 가시적인 형태의 천문도를 보면서 신기한 새로운 정보를 접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새로운 서양 천문학을 접한 조선 실학자들은 객관적 지식 정보는 긍정하면서 수용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전체 우주의 생성의 원리, 우주의 구조와 운동의 원리 등에 대한 자연 철학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사정이 달랐다. 나아가 새로운 천문학 지식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유럽인들이 해석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것은 바로 전통과학의 패러다임에 입각해 비판적이고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것이었다.
실학자들이 서양 천문학의 새로운 지식정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필터는 재정립된 성리학적 인식 체계였다. 크게 나누어 홍대용과 최한기의 기론적 메카니즘을 이용한 해석의 방식이 하나이고, 김석문과 서명응 등에서 볼 수 있는 상수학적 서양과학 읽기가 또 하나였다. 홍대용의 지구설과 지동설, 최한기의 기륜설로 이해되는 뉴튼 천문학 이해가 그것이었다. 또한 조선의 유학자로서는 가장 정합적인 우주론을 펼쳤고, 홍대용 이전에 지동설을 주창한 것으로 유명한 김석문의 우주론은 다름 아닌 상수역학과 서양과학 지식의 결합으로 태어난 독창적인 우주론 사색이었던 것이다.
글 | 문중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