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백동수_네 앞에 장애물이 없음을 슬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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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2.21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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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앞에 장애물이 없음을 슬퍼하라
1771년(영조47) 만초천 모래사장에서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사내가 쥔 검의 자루에서 붉은 수실이 바람에 흔들렸다. 큰 키에 용모가 빼어난 남자. 정수리에 올려 묶은 머리가 말갈기처럼 휘날렸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요도는 왜검보(倭劍譜)를 익히기 좋았다. 사내는 좌우로 검을 놀리며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때 음성이 들렸다.
“동수야! 모름지기 검(劍)이란, 상대의 움직임을 본 후 내지르면 그땐 이미 늦는다! 상대보다 몇 수를 더 내다봐! 상대의 심중을 읽어라!”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사내가 주변을 돌아봤다.
“스승님! 어디 계세요?”
냇물만 흐를 뿐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환청이었다. 그가 볏짚으로 된 허수아비를 뚫어질 듯 노려봤다.
“헙!”
검을 다루는 눈빛이 씩씩하고 장중했다. 구겨진 미간 사이로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그의 검은 엄격했고 힘찼지만 법도에서 벗어남이 없었다. 사내의 왜검술은 토유류, 운광류, 천유류, 류피류 네 가지를 따르고 있었다. 사내의 검은 유독 빨랐다. 고요했다가 피(血)의 비명처럼 검이 울었다. 적진을 뚫고 질러가는 솜씨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사내는 검술을 연마하면서 이따금 혼자 중얼거렸다.
“산사우(山時雨)! 산사에 내리는 비처럼, 칼끝은 적을 향하고 칼날은 위를 향하게 하며, 검을 나의 눈높이로 하되 고요히 땅과 수평을 맞춘다. 과호양수전일타(跨虎兩手前一打)!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어 두 무릎을 구부려 앉으며 땅과 아주 가깝게 단숨에! 적을 내려 벤다! 유성출(流星出)! 유성이 내리꽂히듯! 적을 향해 길게 나가 단번에! 얍! 내려친다. 류사 의검우견(柳絲 倚劍右肩)! 오른손으로 검 손잡이를 잡고, 날이 위로 향하게 손목을 틀고 왼손으로 손잡이를 받쳐 잡는다…….”
모든 동작은 시처럼 함축적이었다. 사내가 검을 좌우로 휘두를 때마다 햇볕이 조각조각 잘려나갔다.
“히얍!”
모래사장을 빛처럼 달리다 순간 점프해 날아올랐다. 공중에서 허수아비를 사선으로 단칼에 베며 땅에 내려섰다. 모래사장에 착지한 그는 채미동도 없었다. 적막이 흘렀다. 몇 초쯤 지났을까. ‘스르륵……툭!’
굵은 볏짚이 반 토막이 난 채 떨어졌다. 불어온 바람에 그의 긴 머리가 휘날렸다. 사내는 심호흡과 함께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엔 기창을 집어 들었다. 사내의 키보다 훨씬 긴 나무 끝에 뾰족한 쇠촉이 박혀 있었다. 그가 기마자세로 섰다. 창을 풍차처럼 돌리다 단번에 날렸다.
“동수야! 모름지기 검(劍)이란, 상대의 움직임을 본 후 내지르면 그땐 이미 늦는다! 상대보다 몇 수를 더 내다봐! 상대의 심중을 읽어라!”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사내가 주변을 돌아봤다.
“스승님! 어디 계세요?”
냇물만 흐를 뿐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환청이었다. 그가 볏짚으로 된 허수아비를 뚫어질 듯 노려봤다.
“헙!”
검을 다루는 눈빛이 씩씩하고 장중했다. 구겨진 미간 사이로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그의 검은 엄격했고 힘찼지만 법도에서 벗어남이 없었다. 사내의 왜검술은 토유류, 운광류, 천유류, 류피류 네 가지를 따르고 있었다. 사내의 검은 유독 빨랐다. 고요했다가 피(血)의 비명처럼 검이 울었다. 적진을 뚫고 질러가는 솜씨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사내는 검술을 연마하면서 이따금 혼자 중얼거렸다.
“산사우(山時雨)! 산사에 내리는 비처럼, 칼끝은 적을 향하고 칼날은 위를 향하게 하며, 검을 나의 눈높이로 하되 고요히 땅과 수평을 맞춘다. 과호양수전일타(跨虎兩手前一打)!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어 두 무릎을 구부려 앉으며 땅과 아주 가깝게 단숨에! 적을 내려 벤다! 유성출(流星出)! 유성이 내리꽂히듯! 적을 향해 길게 나가 단번에! 얍! 내려친다. 류사 의검우견(柳絲 倚劍右肩)! 오른손으로 검 손잡이를 잡고, 날이 위로 향하게 손목을 틀고 왼손으로 손잡이를 받쳐 잡는다…….”
모든 동작은 시처럼 함축적이었다. 사내가 검을 좌우로 휘두를 때마다 햇볕이 조각조각 잘려나갔다.
“히얍!”
모래사장을 빛처럼 달리다 순간 점프해 날아올랐다. 공중에서 허수아비를 사선으로 단칼에 베며 땅에 내려섰다. 모래사장에 착지한 그는 채미동도 없었다. 적막이 흘렀다. 몇 초쯤 지났을까. ‘스르륵……툭!’
굵은 볏짚이 반 토막이 난 채 떨어졌다. 불어온 바람에 그의 긴 머리가 휘날렸다. 사내는 심호흡과 함께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엔 기창을 집어 들었다. 사내의 키보다 훨씬 긴 나무 끝에 뾰족한 쇠촉이 박혀 있었다. 그가 기마자세로 섰다. 창을 풍차처럼 돌리다 단번에 날렸다.
‘슛-슛-슛-퍽!’
기창이 비호처럼 날아가 허수아비의 심장을 뚫었다.
“하압!”
사내가 가상의 적을 제압하며 천변을 달렸다. 허수아비들이 삽시간에 쓰러졌다. 그는 적들을 상상하며 스피드하게 공격과 방어를 이어갔다.
“너의 창은 어디 있느냐? 네 몸이 창이자 방패다. 명심해라! 창을 잊어라! 창과 하나가 되어라!”
귀에 또 환청이 들렸다. 검선(劍仙) 김광택의 음성이었다. 스승은 몇 년 전 저세상으로 떠나고 없었다. 스승의 메아리를 따라 가슴으로 대답했다.
‘스승님! 명심하겠습니다!’
허수아비의 등에 창을 꽂고 사내가 동작을 멈췄다. 호흡을 가다듬고 모래사장에 앉아 천변을 바라보았다.
‘우리나라에는 창과 검의 병기가 너무 없다. 오로지 궁술(弓術)에만 의지하고 있어. 이는 장차 심각한 난관을 보게 될 거야. 내 나라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에 잠긴 그의 안색이 어두웠다. 태양을 올려다본 사내가 일어나 무구를 챙겼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어서 가야겠다.”
기창이 비호처럼 날아가 허수아비의 심장을 뚫었다.
“하압!”
사내가 가상의 적을 제압하며 천변을 달렸다. 허수아비들이 삽시간에 쓰러졌다. 그는 적들을 상상하며 스피드하게 공격과 방어를 이어갔다.
“너의 창은 어디 있느냐? 네 몸이 창이자 방패다. 명심해라! 창을 잊어라! 창과 하나가 되어라!”
귀에 또 환청이 들렸다. 검선(劍仙) 김광택의 음성이었다. 스승은 몇 년 전 저세상으로 떠나고 없었다. 스승의 메아리를 따라 가슴으로 대답했다.
‘스승님! 명심하겠습니다!’
허수아비의 등에 창을 꽂고 사내가 동작을 멈췄다. 호흡을 가다듬고 모래사장에 앉아 천변을 바라보았다.
‘우리나라에는 창과 검의 병기가 너무 없다. 오로지 궁술(弓術)에만 의지하고 있어. 이는 장차 심각한 난관을 보게 될 거야. 내 나라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에 잠긴 그의 안색이 어두웠다. 태양을 올려다본 사내가 일어나 무구를 챙겼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어서 가야겠다.”
1773년(영조49)이었다.
매미울음소리가 귓속을 긁어댔다. 노인들은 느티나무 아래로 몰려들고 아이들은 온종일 멱을 감았다. 목멱산(남산)에서 흘러내린 만초천은 하늘과 구름을 품에 안았다. 백동수는 검술을 연마하고 집으로 향했다. 유리알 같은 만초천에서 온종일 멱을 감다 싱거워진 여덟 살 아이들이 내기를 했다.
“육삼아, 집까지 누가 먼저 가나 내기 하자!”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했다. 고복이가 이기자 지름길을 먼저 골랐다. 내기에 진 육삼이는 징검다리를 건너 달려야 했다. 징검돌을 건너뛰던 육삼이 그만 물로 떨어졌다. 고복이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무릎이 까진 육삼이가 콧방울을 부풀리며 엉엉 울었다.
“왜 울고 있냐?”
아이가 누런 콧물을 새카만 손등으로 훔쳤다.
“친구랑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 제가 졌어요. 씨! 이게 다 저 징검다리 때문이에요!”
백동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육삼이라고 했니? 너는 저 징검다리 덕분에 앞으로 늘 이기게 될 거다.”
아이가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다 고개를 갸웃했다. 백동수가 설명하려 애썼다.
“네 앞에 장애물이 있는 건 아주 좋은 거야. 너를 힘들게 하는 장애물을 친구로 생각해봐. 아저씨 말 알겠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진한 눈망울로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아저씨. 백정이 뭔지 아세요?”
“백정? 알지. 근데 왜 묻니?”
아이는 넘어진 것도 잊고 해맑게 웃었다.
“우리 아버지가 백정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크면 백정이 될 거래요.”
아이는 그 의미를 다 모르는 표정이었다. 백동수는 아이의 구김 없는 미소가 짠했다.
“육삼아, 그것이 네가 건너야할 큰 다리가 되겠구나. 그래도 힘내. 알았지? 그것이 너를 가르칠 스승이 될 거다. 아저씨도 너만 할 때 그랬거든. 울지 말고 뭐든 씩씩하게 이겨 내야한다. 아저씨가 보니 너 나중에 훌륭한 장군 되겠다.”
백동수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아이는 신나게 마을로 사라졌다. 백동수는 손에 강아지풀을 돌리며 터덜터덜 징검돌을 건넜다. 그가 중얼거렸다.
“육삼아…… 지금은 아저씨 말이 이해 안 되겠지만, 곧 알게 된다. 부디 힘들수록 우뚝 서라. 그러면 너의 때가 올 거야.”
백동수는 강아지풀로 풀피리를 불며 목멱산(남산)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가 갑자기 실성한 듯 외쳤다.
“어으, 제기랄! 무과에 급제했으면 뭐해? 관직도 못 받는 이 놈의 서출. 으하하! 내 호가 괜히 야뇌겠는가. 들판에 굶주려 있다는 뜻이니 얼마나 나다운가. 백동수! 동수야! 늘 세상에 굶주린 들판의 야뇌야. 나는! 야뇌다! 으하하!”
백동수는 화통하게 웃으며 마을로 접어들었다. 오늘은 백탑파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백탑(白塔)은 운종가(종로사거리)에 우뚝 솟은 원각사지10층석탑의 별칭이었다. 권세가와 명문거족들은 궁궐 주변에 살았고, 백탑 주변과 남산기슭에는 벼슬 낮은 양반과 중인들이 거주했다.
“이제 오세요? 아까부터 손님이 와 계세요.”
얌전한 아내가 싸리문 밖에서 백동수를 맞았다. 백탑파 일원인 박지원과 매부 이덕무와 박제가도 와있었다. 박지원이 반기며 그의 호를 불렀다.
“이보게 야뇌. 늦었구만. 오늘은 또 누굴 구해주고 이제야 나타났는가? 허허허.”
백동수는 늘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보호해주는 협객이었다. 그는 유능한 무사였고 문장과 글씨에도 능했지만 할아버지가 서자(庶子)였다. 출중한 무관임에도 출세에 장애물이 많았다. 웃을 수 없는 환경이지만 백동수는 항상 긍정적이었다. 그해 가을 그는 가족을 이끌고 강원도 기린협(인제) 골짜기로 들어갔다. 첩첩산중에서 은둔하듯 무예를 연마했다. 그는 신분의 굴레를 자신을 발전시킬 기회이자 스승으로 삼았다. 그렇게 열다섯 해가 흘렀다. 1788년(정조12) 어느 날 정조가 명을 내렸다.
매미울음소리가 귓속을 긁어댔다. 노인들은 느티나무 아래로 몰려들고 아이들은 온종일 멱을 감았다. 목멱산(남산)에서 흘러내린 만초천은 하늘과 구름을 품에 안았다. 백동수는 검술을 연마하고 집으로 향했다. 유리알 같은 만초천에서 온종일 멱을 감다 싱거워진 여덟 살 아이들이 내기를 했다.
“육삼아, 집까지 누가 먼저 가나 내기 하자!”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했다. 고복이가 이기자 지름길을 먼저 골랐다. 내기에 진 육삼이는 징검다리를 건너 달려야 했다. 징검돌을 건너뛰던 육삼이 그만 물로 떨어졌다. 고복이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무릎이 까진 육삼이가 콧방울을 부풀리며 엉엉 울었다.
“왜 울고 있냐?”
아이가 누런 콧물을 새카만 손등으로 훔쳤다.
“친구랑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 제가 졌어요. 씨! 이게 다 저 징검다리 때문이에요!”
백동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육삼이라고 했니? 너는 저 징검다리 덕분에 앞으로 늘 이기게 될 거다.”
아이가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다 고개를 갸웃했다. 백동수가 설명하려 애썼다.
“네 앞에 장애물이 있는 건 아주 좋은 거야. 너를 힘들게 하는 장애물을 친구로 생각해봐. 아저씨 말 알겠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진한 눈망울로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아저씨. 백정이 뭔지 아세요?”
“백정? 알지. 근데 왜 묻니?”
아이는 넘어진 것도 잊고 해맑게 웃었다.
“우리 아버지가 백정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크면 백정이 될 거래요.”
아이는 그 의미를 다 모르는 표정이었다. 백동수는 아이의 구김 없는 미소가 짠했다.
“육삼아, 그것이 네가 건너야할 큰 다리가 되겠구나. 그래도 힘내. 알았지? 그것이 너를 가르칠 스승이 될 거다. 아저씨도 너만 할 때 그랬거든. 울지 말고 뭐든 씩씩하게 이겨 내야한다. 아저씨가 보니 너 나중에 훌륭한 장군 되겠다.”
백동수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아이는 신나게 마을로 사라졌다. 백동수는 손에 강아지풀을 돌리며 터덜터덜 징검돌을 건넜다. 그가 중얼거렸다.
“육삼아…… 지금은 아저씨 말이 이해 안 되겠지만, 곧 알게 된다. 부디 힘들수록 우뚝 서라. 그러면 너의 때가 올 거야.”
백동수는 강아지풀로 풀피리를 불며 목멱산(남산)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가 갑자기 실성한 듯 외쳤다.
“어으, 제기랄! 무과에 급제했으면 뭐해? 관직도 못 받는 이 놈의 서출. 으하하! 내 호가 괜히 야뇌겠는가. 들판에 굶주려 있다는 뜻이니 얼마나 나다운가. 백동수! 동수야! 늘 세상에 굶주린 들판의 야뇌야. 나는! 야뇌다! 으하하!”
백동수는 화통하게 웃으며 마을로 접어들었다. 오늘은 백탑파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백탑(白塔)은 운종가(종로사거리)에 우뚝 솟은 원각사지10층석탑의 별칭이었다. 권세가와 명문거족들은 궁궐 주변에 살았고, 백탑 주변과 남산기슭에는 벼슬 낮은 양반과 중인들이 거주했다.
“이제 오세요? 아까부터 손님이 와 계세요.”
얌전한 아내가 싸리문 밖에서 백동수를 맞았다. 백탑파 일원인 박지원과 매부 이덕무와 박제가도 와있었다. 박지원이 반기며 그의 호를 불렀다.
“이보게 야뇌. 늦었구만. 오늘은 또 누굴 구해주고 이제야 나타났는가? 허허허.”
백동수는 늘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보호해주는 협객이었다. 그는 유능한 무사였고 문장과 글씨에도 능했지만 할아버지가 서자(庶子)였다. 출중한 무관임에도 출세에 장애물이 많았다. 웃을 수 없는 환경이지만 백동수는 항상 긍정적이었다. 그해 가을 그는 가족을 이끌고 강원도 기린협(인제) 골짜기로 들어갔다. 첩첩산중에서 은둔하듯 무예를 연마했다. 그는 신분의 굴레를 자신을 발전시킬 기회이자 스승으로 삼았다. 그렇게 열다섯 해가 흘렀다. 1788년(정조12) 어느 날 정조가 명을 내렸다.
“옛날 우리 선조대왕께서 하교하기를,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여 기우는 데 있어 곁가지를 따지지 않는 것인데 인신이 충성을 바침에 있어 어찌 반드시 정적(正嫡)에게만 해당하겠는가?’ 하였으니, 위대한 성인의 말씀이다. … 서류(서얼)들 중에 뛰어난 재주를 지닌 선비로서 나라에 쓰임이 될 만한 사람이 어찌 없겠는가? … 그들의 포부도 펴보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또한 과인의 허물인 것이다. 이조와 병조의 신하들로 하여금 대신에게 나아가 의논하여 소통시킬 수 있는 방법과 권장 발탁할 수 있는 방법을 특별히 강구하게 하라.”
천출로 외면당했던 백동수에게도 기회가 왔다. 매부 이덕무의 천거로 관직에 들어섰다. 신분보다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에 노력했던 정조의 정책 덕분이었다. 수시로 궁 밖을 행차했던 정조는 선발한 무사들로 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탄생 시켰다. 장용영 병사들은 매일 강도 높은 훈련으로 실력을 다졌다.
백동수는 장용영 외영 초관으로 임명되었다. 백여 명 부하들을 지휘하고 무예를 가르치는 직책이었다. 그때 사십대 중반이었지만 검과 창을 따를 자가 없었다. 초관 백동수는 병사들이 칼이나 창 등 단병기(휴대 간편, 근접전 유리)를 크게 선호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오랜 전통 장기인 궁술훈련에 대부분이 집중했다. 전사(前史)를 돌아보니 조선의 육군이 연이어 패전한 것은 전술과 무기의 열세로 압축되었다. 이 문제를 정조도 고민했다.
일 년 후 정조는 『무예도보통지』 편찬을 명했다. 규장각 검서관으로 있었던 이덕무와 박제가, 장용영 초관 백동수가 책임을 맡았다. 이덕무는 문헌 고증을 담당했다. 박제가는 참고문헌 취합과 원고집필과 글씨를 맡았다. 그리고 백동수는 무예를 시연하여 고증하는 일과 최종 교정과 간행을 담당했다. 그는 연무장에서 훈련 중인 병사들의 자세와 실력을 살폈다. 화원과 함께 장용영 무기고에 가서 실물을 점검하고 파악했다. 다양한 무기를 직접 다루려면 넉넉한 공간이 필요했다. 백동수와 이덕무와 박제가는 다양한 동선을 생각해 장용영 내영 무기고 옆에 임시막사를 설치했다. 종이와 집필묵과 널찍한 책상도 준비했다. 한쪽은 공간을 확보해 다양한 무기시연이 가능하게 했다. 만반의 준비가 끝나자 셋은 한자리에 다시 모였다.
“30년 지기인 우리 셋이 의기투합해서 국방의 기본이 될 무예교범서를 기필코 완성하세!”
백동수가 박제가와 이덕무에게 말했다.
“두 분 검서관님도 잘 아시겠지만, 이번 『무예도보통지』의 핵심은 우리나라 군병들이 지금 단병기예에 취약하기 때문에 이것을 실제로 훈련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합니다.”
박제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덕무가 동의했다. 그들은 막사에서 밤낮 편찬에 몰두했다. 백동수 동작을 화원 허감(許鑑)이 상세히 그림으로 옮겼다. 백동수는 과거 기록들을 철저히 수정해 나갔고 하나로 통일시켰다. 세 사람은 토론과 회의를 반복하며 차근차근 진행했다.
어느 새 밖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백동수가 앞에 나와 칼로 베기 시범을 보였다. 이덕무는 문헌자료와 비교하며 백동수의 설명에 집중했다. 박제가는 무기들의 장단점을 적어나갔다. “왜검에는 네 가지 기법이 있지요. 왜검(倭劍)의 도검기법은 단병기 공격이기 때문에 우리병사들에게 아주 유용합니다.”
시간은 쏜살처럼 날아가 어느새 2경(밤9시~11시)이었다. 종각에서 금루관이 통행금지를 알리는 28번의 인정을 울렸다. 종소리와 함께 궁의 사대문이 모두 잠겼다. 막사를 환히 밝힌 화톳불에서 젖은 장작이 지글지글 김을 뿜었다. 책상 위 가늘게 꼰 심지 불꽃이 졸음에 겨워 비틀거렸다. 흰 막사에 비친 백동수의 검은 그림자가 거인처럼 보였다.
“이게 등패입니다. 한손엔 등패를 들고 한 손엔 단도를 쥐고 공격과 방어를 같이합니다.”
백동수가 등패 고리에 왼손을 깊이 끼웠다.
“등패의 재질은 등나무라 무척 가볍지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간혹 멀리서 날아온 총알을 막아내기도 합니다.”
그가 이번엔 낭선을 들고 공격자세를 취했다. 이덕무는 의자에 앉아 백동수의 몸동작을 살폈다. 박제가는 세필로 속기하며 시연을 따라갔다. 화원의 붓끝에서 머리에 상투를 튼 작은 무사가 다양한 병기를 들고 살아 움직였다.
“낭선은 통대나무에 가지를 여러 개 남기고 끝에 독을 바릅니다. 그러면 적군은 가지에 닿기만 해도 죽으니 전의를 상실하지요. 과거 왜국의 검을 막는데 효과적이었던 것이 낭선입니다. 적의 칼이 들어올 때, 이렇게! 낭선에 뻗은 대나무가지 사이로 칼을 끼워 확 잡아 꺾거나, 이렇게 확! 밀치면 공격하기 어렵지요.”
그때 먼 곳에서 궁궐 금루관이 삼경을 알렸다.
“삼경(밤11시~새벽1시)이오~!”
화톳불을 쬐던 이덕무가 길게 하품했다. 그가 잠을 쫓으려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백동수는 당파를 들고 있었다.
“당파는 삼지창이라고도 하는데 공격과 방어 다 됩니다. 적이 창으로 찌르면, 여기 갈라진 곳에 재빨리 창을 걸어 이렇게! 비틀어버립니다.”
백동수는 실학정신(사실에 입각한)으로 편찬에 임했다. 어느새 사경(새벽1시~3시)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당파를 설명하는 백동수에게 화원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초관나리, 근데 전쟁에서 이렇게 다양한 무기가 꼭 필요한가요? 사실…… 이걸 다 쓰기엔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백동수가 지그시 웃었다.
“그런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이 어떤 무기로 쳐들어올지 아무도 모르지요? 그래서 다 필요합니다. 무기들도 음양오행처럼 합과 극이 있지요. 낭선이 아무리 강해도 등패에겐 꼼짝 못합니다. 낭선이 찌르면 등패로 막고 칼로 적을 찔러 공격하지요. 그런데 이 등패를 잡는 천적이 곤봉입니다. 곤봉과 철퇴와 도리깨는 등패를 단번에 때리거나 부수지요. 등패를 쥔 적군의 어깨뼈도 부숩니다. 그런데 곤봉이나 도리깨나 철퇴를 잡는 건, 원거리에 날리면 되는 장창이고요. 가까이 가서 곤봉에 맞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반전이 있습니다. 이 장창은 당파나 낭선을 만나면 둘 다 망합니다. 뒤엉켜 싸우질 못하거든요. 당파나 낭선이 우왕좌왕할 때 다시 등패가 신속히 그걸 때려잡아요. 결국 모든는 유사시에 서로의 빈곳과 단점을 보완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질문한 화원과 듣고 있던 이덕무와 박제가 모두 백동수의 설명에 감탄했다.
“오경(새벽3시~5시)이오.”
종각에서 서른세 번의 타루가 울렸다. 새날이 시작되었다. 밤새 잠겼던 궁문이 활짝 열렸다. 밖에서 근무교대를 하는 무관들이 웅성거렸다. 여명이 걷히자 막사 안쪽까지 아침햇살이 황금막대처럼 길게 들어왔다. 백동수 이덕무 박제가는 그 후로도 수시로 모였고 많은 밤을 새며 2년이 흘렀다.
일 년 후 정조는 『무예도보통지』 편찬을 명했다. 규장각 검서관으로 있었던 이덕무와 박제가, 장용영 초관 백동수가 책임을 맡았다. 이덕무는 문헌 고증을 담당했다. 박제가는 참고문헌 취합과 원고집필과 글씨를 맡았다. 그리고 백동수는 무예를 시연하여 고증하는 일과 최종 교정과 간행을 담당했다. 그는 연무장에서 훈련 중인 병사들의 자세와 실력을 살폈다. 화원과 함께 장용영 무기고에 가서 실물을 점검하고 파악했다. 다양한 무기를 직접 다루려면 넉넉한 공간이 필요했다. 백동수와 이덕무와 박제가는 다양한 동선을 생각해 장용영 내영 무기고 옆에 임시막사를 설치했다. 종이와 집필묵과 널찍한 책상도 준비했다. 한쪽은 공간을 확보해 다양한 무기시연이 가능하게 했다. 만반의 준비가 끝나자 셋은 한자리에 다시 모였다.
“30년 지기인 우리 셋이 의기투합해서 국방의 기본이 될 무예교범서를 기필코 완성하세!”
백동수가 박제가와 이덕무에게 말했다.
“두 분 검서관님도 잘 아시겠지만, 이번 『무예도보통지』의 핵심은 우리나라 군병들이 지금 단병기예에 취약하기 때문에 이것을 실제로 훈련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합니다.”
박제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덕무가 동의했다. 그들은 막사에서 밤낮 편찬에 몰두했다. 백동수 동작을 화원 허감(許鑑)이 상세히 그림으로 옮겼다. 백동수는 과거 기록들을 철저히 수정해 나갔고 하나로 통일시켰다. 세 사람은 토론과 회의를 반복하며 차근차근 진행했다.
어느 새 밖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백동수가 앞에 나와 칼로 베기 시범을 보였다. 이덕무는 문헌자료와 비교하며 백동수의 설명에 집중했다. 박제가는 무기들의 장단점을 적어나갔다. “왜검에는 네 가지 기법이 있지요. 왜검(倭劍)의 도검기법은 단병기 공격이기 때문에 우리병사들에게 아주 유용합니다.”
시간은 쏜살처럼 날아가 어느새 2경(밤9시~11시)이었다. 종각에서 금루관이 통행금지를 알리는 28번의 인정을 울렸다. 종소리와 함께 궁의 사대문이 모두 잠겼다. 막사를 환히 밝힌 화톳불에서 젖은 장작이 지글지글 김을 뿜었다. 책상 위 가늘게 꼰 심지 불꽃이 졸음에 겨워 비틀거렸다. 흰 막사에 비친 백동수의 검은 그림자가 거인처럼 보였다.
“이게 등패입니다. 한손엔 등패를 들고 한 손엔 단도를 쥐고 공격과 방어를 같이합니다.”
백동수가 등패 고리에 왼손을 깊이 끼웠다.
“등패의 재질은 등나무라 무척 가볍지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간혹 멀리서 날아온 총알을 막아내기도 합니다.”
그가 이번엔 낭선을 들고 공격자세를 취했다. 이덕무는 의자에 앉아 백동수의 몸동작을 살폈다. 박제가는 세필로 속기하며 시연을 따라갔다. 화원의 붓끝에서 머리에 상투를 튼 작은 무사가 다양한 병기를 들고 살아 움직였다.
“낭선은 통대나무에 가지를 여러 개 남기고 끝에 독을 바릅니다. 그러면 적군은 가지에 닿기만 해도 죽으니 전의를 상실하지요. 과거 왜국의 검을 막는데 효과적이었던 것이 낭선입니다. 적의 칼이 들어올 때, 이렇게! 낭선에 뻗은 대나무가지 사이로 칼을 끼워 확 잡아 꺾거나, 이렇게 확! 밀치면 공격하기 어렵지요.”
그때 먼 곳에서 궁궐 금루관이 삼경을 알렸다.
“삼경(밤11시~새벽1시)이오~!”
화톳불을 쬐던 이덕무가 길게 하품했다. 그가 잠을 쫓으려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백동수는 당파를 들고 있었다.
“당파는 삼지창이라고도 하는데 공격과 방어 다 됩니다. 적이 창으로 찌르면, 여기 갈라진 곳에 재빨리 창을 걸어 이렇게! 비틀어버립니다.”
백동수는 실학정신(사실에 입각한)으로 편찬에 임했다. 어느새 사경(새벽1시~3시)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당파를 설명하는 백동수에게 화원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초관나리, 근데 전쟁에서 이렇게 다양한 무기가 꼭 필요한가요? 사실…… 이걸 다 쓰기엔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백동수가 지그시 웃었다.
“그런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이 어떤 무기로 쳐들어올지 아무도 모르지요? 그래서 다 필요합니다. 무기들도 음양오행처럼 합과 극이 있지요. 낭선이 아무리 강해도 등패에겐 꼼짝 못합니다. 낭선이 찌르면 등패로 막고 칼로 적을 찔러 공격하지요. 그런데 이 등패를 잡는 천적이 곤봉입니다. 곤봉과 철퇴와 도리깨는 등패를 단번에 때리거나 부수지요. 등패를 쥔 적군의 어깨뼈도 부숩니다. 그런데 곤봉이나 도리깨나 철퇴를 잡는 건, 원거리에 날리면 되는 장창이고요. 가까이 가서 곤봉에 맞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반전이 있습니다. 이 장창은 당파나 낭선을 만나면 둘 다 망합니다. 뒤엉켜 싸우질 못하거든요. 당파나 낭선이 우왕좌왕할 때 다시 등패가 신속히 그걸 때려잡아요. 결국 모든는 유사시에 서로의 빈곳과 단점을 보완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질문한 화원과 듣고 있던 이덕무와 박제가 모두 백동수의 설명에 감탄했다.
“오경(새벽3시~5시)이오.”
종각에서 서른세 번의 타루가 울렸다. 새날이 시작되었다. 밤새 잠겼던 궁문이 활짝 열렸다. 밖에서 근무교대를 하는 무관들이 웅성거렸다. 여명이 걷히자 막사 안쪽까지 아침햇살이 황금막대처럼 길게 들어왔다. 백동수 이덕무 박제가는 그 후로도 수시로 모였고 많은 밤을 새며 2년이 흘렀다.
1790년(정조14) 4월 29일 봄꽃이 만개했다. 그들은 4권 4책으로 된 『무예도보통지』와 한글로 풀어 쓴 언해본(1권 1책)을 완성했다. 조선최고의 무예교범이자 동양무예의 완결판이 탄생한 것이었다. 정조는 『무예도보통지』 서(序)에서 편찬 배경과 단병접전 무예교범의 전사를 간략히 언급했다.
“우리나라에는 창이나 검의 병기 없이 궁술(弓術)만 있었다. 임진왜란 뒤 선조 때 곤봉(棍棒)·장창(長槍) 등 6가지 기예를 다룬 『무예제보』가 편찬되었고, 영조 때에는 여기에 죽장창(竹長槍)·예도(銳刀) 등 12기를 더하여『무예신보』를 간행하였고, 다시 마상(馬上)·격구(擊球) 등 6기를 더하여 도합 24기로 된 『무예도보통지』를 만들었다.”
백동수는 언해본을 필사해 장용영 병사들이 활용하게 했다. 그가 병사들을 모아놓고 당부했다.
“모두 들어라! 무(武)는 실천을 통해서만 단련된다. 실천은 훈련이며 병술은 약속이다! 그 모든 것이『무예도보통지』안에 있다. 이 책을 가까이 두고 내 것이 되게 해라! 알겠느냐?”
병사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모두 들어라! 무(武)는 실천을 통해서만 단련된다. 실천은 훈련이며 병술은 약속이다! 그 모든 것이『무예도보통지』안에 있다. 이 책을 가까이 두고 내 것이 되게 해라! 알겠느냐?”
병사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어느 날 백동수는 무과시험감독이 되어 목멱산 쪽으로 말을 몰았다. 만초천을 지나다 모래사장에서 한 사내를 봤다. 멀리서 봐도 검 실력이 제법이었다. 백동수는 부하를 시켜 그를 불렀다. 청년이 백동수 앞에 머리를 숙였다. 늠름한 청년은 육삼이였다. 긴 세월이 흘러 둘은 서로 알아보지 못했다. 백동수가 물었다.
“자네는 왜 무술을 하는가?”
“소인은 천한 백정의 자식이라 무관이 될 수 없으나 장애물을 넘기 위해 하옵니다.”
“장애물을 넘으려 무술을 한다고?”
백동수가 물끄러미 청년을 바라봤다.
“어릴 때 어떤 분이 저기 모래사장에서 늘 창검술을 익혔습니다. 어느 날 저 징검다리에서 제가 넘어져 울고 있을 때, 그분이 제게 해준 말씀이 있었지요. 저는 자라면서 그 어르신의 말씀을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오래전이라 존함도 모르고 다시 뵌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네 앞에 장애물이 없음을 슬퍼하라. 장애물은 너를 발전시키는 친구이자 스승이다.’ 라고 일러주셨던 말씀은 제게 인생좌우명이 되었고, 평생 스승으로 모시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군. 자네는 어떤 무사가 되고 싶은가?”
육삼은 공손히 아뢰었다.
“저는 천민이오나, 하늘이 허락한다면 힘없는 백성들을 위한 협객이 되고 싶습니다.”
백동수가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 말을 몰았다. 저만치 멀어지던 그가 육삼이에게 돌아왔다.
“나라와 백성을 보호하는 일에 귀천이 따로 있겠는가. 이거 받게.”
백동수는 육삼이에게 뭔가를 주고 사라졌다. 육삼이는 영문도 모른 채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았다. 청년 육삼은 느티나무 아래로 가 보자기를 끌렀다. 네 권의 서책이었다.
“무예도보통지(언해본) ……? 이게 뭘까?”
첫 장을 넘긴 육삼은, 눈이 번쩍 뜨였다. 그가 늘 목말라했던 무예의 모든 것이 그 안에 있었다. 서책을 살피던 육삼은 백동수가 사라진 방향에다 큰절을 올렸다. 백동수는 그 후 충청도 비인현감과 평안도 박천군수를 지내며 백성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오래지 않아 백동수는 부국강병을 꿈꿨던 정조의 의문스런 죽음(49세)과 마주쳤다. 그러다 1802년, 노론벽파에 의해 유배되어 1816년에 생을 마감했다.
“자네는 왜 무술을 하는가?”
“소인은 천한 백정의 자식이라 무관이 될 수 없으나 장애물을 넘기 위해 하옵니다.”
“장애물을 넘으려 무술을 한다고?”
백동수가 물끄러미 청년을 바라봤다.
“어릴 때 어떤 분이 저기 모래사장에서 늘 창검술을 익혔습니다. 어느 날 저 징검다리에서 제가 넘어져 울고 있을 때, 그분이 제게 해준 말씀이 있었지요. 저는 자라면서 그 어르신의 말씀을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오래전이라 존함도 모르고 다시 뵌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네 앞에 장애물이 없음을 슬퍼하라. 장애물은 너를 발전시키는 친구이자 스승이다.’ 라고 일러주셨던 말씀은 제게 인생좌우명이 되었고, 평생 스승으로 모시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군. 자네는 어떤 무사가 되고 싶은가?”
육삼은 공손히 아뢰었다.
“저는 천민이오나, 하늘이 허락한다면 힘없는 백성들을 위한 협객이 되고 싶습니다.”
백동수가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 말을 몰았다. 저만치 멀어지던 그가 육삼이에게 돌아왔다.
“나라와 백성을 보호하는 일에 귀천이 따로 있겠는가. 이거 받게.”
백동수는 육삼이에게 뭔가를 주고 사라졌다. 육삼이는 영문도 모른 채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았다. 청년 육삼은 느티나무 아래로 가 보자기를 끌렀다. 네 권의 서책이었다.
“무예도보통지(언해본) ……? 이게 뭘까?”
첫 장을 넘긴 육삼은, 눈이 번쩍 뜨였다. 그가 늘 목말라했던 무예의 모든 것이 그 안에 있었다. 서책을 살피던 육삼은 백동수가 사라진 방향에다 큰절을 올렸다. 백동수는 그 후 충청도 비인현감과 평안도 박천군수를 지내며 백성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오래지 않아 백동수는 부국강병을 꿈꿨던 정조의 의문스런 죽음(49세)과 마주쳤다. 그러다 1802년, 노론벽파에 의해 유배되어 1816년에 생을 마감했다.
스토리원고 | | | 김명희 소설가 |
자료원고 | | | 이병유 한국학중앙연구원 |
일러스트 | | | 컬처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