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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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2.21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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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 오랑캐라고 폄하하던 만주족이 중국 문명의 본산이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청나라를 세우자 중화문명과 오랑캐 사이에 혼란이 생긴다. 물론 17세기 조선의 상황에서 그 혼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임진왜란 때 군사를 보내주어 우리를 도와준 명나라에 대한 은혜를 갚고, 명나라의 복수를 갚기 위해 청나라를 정벌해야 한다고 하는 이른 바 ‘북벌론(北伐論)’이 한 시대를 넘어 18세기까지 위세를 떨쳤던 것이다. 병자호란을 통해서 이미 청나라에게 항복을 했을 뿐만 아니라 군사력에 있어서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 조선이었기에 청나라를 치자고 주장하는 것은 관념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연암 박지원의 작품 <허생전(許生傳)>에는 이러한 관념적 허위를 맹렬히 질타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은거해서 독서에 열중하던 허생이라고 하는 가난한 선비가 변부자의 돈을 빌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한다. 많은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도적들을 교화한 후 남은 돈은 바다에 빠뜨려 버린다. 그리고 다시 가난한 생활로 돌아온다. 이 일을 겪은 변부자는 자신이 알고 있던 이완 장군에게 허생을 천거하게 되고, 이들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완은 북벌론의 이념이 사회적인 맹위를 떨칠 때 그 선봉에 서있던 장군이다. 그는 청나라를 칠 계책을 묻는데, 이에 대해 허생은 몇 가지 계책을 내 놓는다.
선비들은 청나라 과거에 응시하고, 서민들은 중국 강남으로 가서 장사를 하면서 그들의 허실을 정탐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나라 사람들의 옷을 입고 그들의 말을 하며 변발을 해야 한다는 계책을 내놓았다. 철저히 그들의 문명과 풍습을 이용해서 청나라를 정확히 파악해야 정벌 전쟁을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당연하게도 이완 장군은 난색을 표명한다.
박지원은 이같은 상황 설정을 통해서 당시 우리나라 사대부들이 얼마나 청나라를 관념적으로 받아들였는가를 통렬히 비판한다. 문제는 관념이 아니라 우리가 딛고 선 현실이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오랑캐라는 점을 철저히 인식할 정도로 뼈를 깎는 자기반성이 있어야 새로운 역사를 열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스며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실제적인 학문, 곧 실학의 정신이었다.
글 | 김풍기(金豊起),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