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벽과 정약용_하늘에 새긴 기도 천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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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2.09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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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새긴 기도, 천주학
김명희
둘은 사돈지간이었다. 이벽의 누이는 1772년(영조48) 정약현의 아내가 되었다. 정약현은 정약용의 큰형님이고 이벽의 누이는 정약용의 큰형수였다. 그때 정약용 나이 열 살쯤이었다. 정약용은 1776년(영조 52)무렵 서울로 와 살았다. 이때부터 정약용과 이벽은 본격적으로 가까워졌다. 이벽은 당시 24세로 한창 청년이었다. 그의 부친 이부만은 아들이 훌륭한 무사가 되길 바랐다.
“벽아, 너는 신체건장하고 무술에 능하니, 무관이 되어라.”
그러나 이벽은 출세에 뜻이 없었다. 아버지의 바람을 거부하고 다양한 공부를 했다. 정약용은 시를 지어 선물하며 이벽의 뜻을 지지했다.
“벽아, 너는 신체건장하고 무술에 능하니, 무관이 되어라.”
그러나 이벽은 출세에 뜻이 없었다. 아버지의 바람을 거부하고 다양한 공부를 했다. 정약용은 시를 지어 선물하며 이벽의 뜻을 지지했다.
이벽과 정약용. 그들은 이제 세상에 없다. 꽃들이 지듯 여러 번 해가 바뀌었다. 그렇다고 과거의 그 꽃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봄에 새로 핀 꽃을 보면, 우리는 안다. 작년에도 이보다 더 숭고한 꽃이 이미 다녀갔음을. 두 사내가 예전에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에 피었다 진 후, 하늘로 떠났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 장렬히 피었다 진 그 붉은 꽃들의 이야기다. 우리보다 훨씬 이전에 태어나 우리 앞에 살다 먼저 간 두 사내. 바로 정약용과 이벽의 이야기다. 그 두 사내가 오늘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이 자리에 초대했다.
문풍지 사이로 찬바람이 송곳처럼 찔렀다. 정약용은 언 손을 천천히 비볐다. 그의 책상에 아직 한 글자도 쓰지 않은 백지가 놓여있다.
‘쪼르르륵……!’
그가 연적을 기울여 벼루에 물을 따랐다. 방 안은 몹시 고요했다. 사내가 기도하듯 천천히 먹을 갈았다. 두꺼운 백지 곁에 방금 갈은 먹물과 붓이 놓였다. 먹물은 검다 못해 오히려 맑았다. 방에서도 얼음이 어는 찬 겨울. 그가 잠시 들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북풍이 사내의 검은 갓끈과 흰 수염을 어루만졌다. 밖에는 눈이 펑펑 내렸다. 사내가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잿빛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한도처럼 눈 속에 잠긴 산.
“금방 그칠 눈이 아니로구나…….”
그가 팔을 뻗어 문을 닫았다. 정약용은 시린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다시 넣었다. 눈으로는 백지를 내려다보았다. 꺼칠한 옆모습이 고독하고 쓸쓸했다. 길게 심호흡을 한 후 오른 손에 천천히 붓을 들었다. 붓 끝에 먹물을 몇 번 찍었다. 한 손으로 도포자락을 받치고 붓으로 글씨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백지 첫 장이 서서히 채워졌다.
‘쪼르르륵……!’
그가 연적을 기울여 벼루에 물을 따랐다. 방 안은 몹시 고요했다. 사내가 기도하듯 천천히 먹을 갈았다. 두꺼운 백지 곁에 방금 갈은 먹물과 붓이 놓였다. 먹물은 검다 못해 오히려 맑았다. 방에서도 얼음이 어는 찬 겨울. 그가 잠시 들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북풍이 사내의 검은 갓끈과 흰 수염을 어루만졌다. 밖에는 눈이 펑펑 내렸다. 사내가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잿빛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한도처럼 눈 속에 잠긴 산.
“금방 그칠 눈이 아니로구나…….”
그가 팔을 뻗어 문을 닫았다. 정약용은 시린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다시 넣었다. 눈으로는 백지를 내려다보았다. 꺼칠한 옆모습이 고독하고 쓸쓸했다. 길게 심호흡을 한 후 오른 손에 천천히 붓을 들었다. 붓 끝에 먹물을 몇 번 찍었다. 한 손으로 도포자락을 받치고 붓으로 글씨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백지 첫 장이 서서히 채워졌다.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대. 무슨 이야기부터 들려줄까요? 아, 그래요.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기해년(1779)이었습니다…….”
이벽은 주어사로 가기 전 천진암에 먼저 들렀다. 한양에서 출발한 멀고먼 행로였다. 이벽은 지친 몸으로 긴 날을 걸었다. 얼굴과 손이 얼어 푸르스름했다. 외롭고 쓸쓸한 목자. 긴 여행으로 옷은 남루했고 신발은 헤졌다. 자갈과 거친 흙길에 버선발이 비집고 나왔다. 천진암은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에 있었다. 입구로 들어섰을 때는 잠시 눈이 그쳤다. 천진암(天眞庵)은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앵자봉에 안겨 포근한 꿈을 꾸었다. 겨울이었고 이따금 박새의 깃털처럼 눈발이 오락가락 날렸다.
밤이 깊어지자 눈발은 다시 굵어졌다.
권철신이 강학하는 주어사에 정약전이 폐백을 들고 당도했다. 머리에는 솜을 누빈 검정색 방한용 쓰개를 썼다. 길게 눌러쓴 쓰개모자는 양쪽 귀까지 따듯하게 덮었고 끈은 목에 묶고 있었다. 솜두루마기에도 눈이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폐백을 들고 문 밖에 선 정약전이 예를 다해 인사했다.
“스승님을 뵈러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어서 이것을 받아 주세요.”
정약전은 자신의 마음을 다해 권철신에게 선물을 올렸다. 권철신과 일행들은 모두 놀라며 정약전을 반겨 맞았다. 그들은 담소를 나누며 서로를 환대했다. 그 시각 이벽도 천진암을 거쳐 주어사(走漁寺)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멀어져가는 그의 등을 향해 흰 자작나무가 이따금 손을 흔들었다. 여주 땅에 있는 산북면 앵자봉 서쪽. 주어사에도 폭설이 솜이불처럼 덮여있었다. 한밤중이었지만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환했다. 문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허허, 웬 눈이 이리 내리나.”
여러 날 먼 길을 온 이벽이 툇마루 앞에서 멱신을 털었다. 너구리털과 목화솜을 넣어 지은 두툼한 배자가 따뜻해 보였다. 멱신은 짚으로 엮은 눈 장화였다. 멱신을 벗자 갓신을 신은 발이 나왔다. 다행히 발은 젖지 않았다. 방 안을 밝힌 등촉이 문풍지로 새나와 따뜻했다. 담론 중이던 일행이 이벽의 기척을 듣고 일제히 방문을 열었다.
권철신이 강학하는 주어사에 정약전이 폐백을 들고 당도했다. 머리에는 솜을 누빈 검정색 방한용 쓰개를 썼다. 길게 눌러쓴 쓰개모자는 양쪽 귀까지 따듯하게 덮었고 끈은 목에 묶고 있었다. 솜두루마기에도 눈이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폐백을 들고 문 밖에 선 정약전이 예를 다해 인사했다.
“스승님을 뵈러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어서 이것을 받아 주세요.”
정약전은 자신의 마음을 다해 권철신에게 선물을 올렸다. 권철신과 일행들은 모두 놀라며 정약전을 반겨 맞았다. 그들은 담소를 나누며 서로를 환대했다. 그 시각 이벽도 천진암을 거쳐 주어사(走漁寺)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멀어져가는 그의 등을 향해 흰 자작나무가 이따금 손을 흔들었다. 여주 땅에 있는 산북면 앵자봉 서쪽. 주어사에도 폭설이 솜이불처럼 덮여있었다. 한밤중이었지만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환했다. 문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허허, 웬 눈이 이리 내리나.”
여러 날 먼 길을 온 이벽이 툇마루 앞에서 멱신을 털었다. 너구리털과 목화솜을 넣어 지은 두툼한 배자가 따뜻해 보였다. 멱신은 짚으로 엮은 눈 장화였다. 멱신을 벗자 갓신을 신은 발이 나왔다. 다행히 발은 젖지 않았다. 방 안을 밝힌 등촉이 문풍지로 새나와 따뜻했다. 담론 중이던 일행이 이벽의 기척을 듣고 일제히 방문을 열었다.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광암(曠菴) 선생 아니십니까? 어서 오세요. 눈길에 고생하셨습니다.”
주어사에 모인 일행은 근 열흘간 담경을 나누었다. 그들이 공부한 것은 다양했다. 옛 성현의 경전과 윤리서를 거쳐 서양 선교사들이 쓴 종교개론서로 넘어갔다.
초보적 종교단계로 진입하는 발판이 주어사에서 열흘간의 집중 학습으로 이어졌다. 밖에는 밤낮으로 쌀가루처럼 흰 폭설이 쌓였다. 그들 가슴에도 영생의 말씀이 쌓여갔다.
일행은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새 종교에 대해 배운 것을 실천했다. 그들은 매일 아침저녁 엎드려 기도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7일은 모두 쉬고 묵상에 전심했다. 그날에는 육식도 멀리 했다. 이 모든 것을 극히 비밀리에 실천했다. 그들은 이후에도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찾아다니며 샘솟는 은혜에 힘든 줄 몰랐다. 그들은 좀 더 견고한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의논 끝에 명례방(명동)에 사는 중인 김범우의 집이 예배소가 되었다.
주어사에 모인 일행은 근 열흘간 담경을 나누었다. 그들이 공부한 것은 다양했다. 옛 성현의 경전과 윤리서를 거쳐 서양 선교사들이 쓴 종교개론서로 넘어갔다.
초보적 종교단계로 진입하는 발판이 주어사에서 열흘간의 집중 학습으로 이어졌다. 밖에는 밤낮으로 쌀가루처럼 흰 폭설이 쌓였다. 그들 가슴에도 영생의 말씀이 쌓여갔다.
일행은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새 종교에 대해 배운 것을 실천했다. 그들은 매일 아침저녁 엎드려 기도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7일은 모두 쉬고 묵상에 전심했다. 그날에는 육식도 멀리 했다. 이 모든 것을 극히 비밀리에 실천했다. 그들은 이후에도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찾아다니며 샘솟는 은혜에 힘든 줄 몰랐다. 그들은 좀 더 견고한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의논 끝에 명례방(명동)에 사는 중인 김범우의 집이 예배소가 되었다.
‘우리들은,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효성을 다할 뿐입니다.’
미사를 마친 그들은 김범우의 집에서 나와 신속히 흩어졌다. 그렇게 바람처럼 움직였고 시각이 되면 김범우 집으로 조용히 모였다. 연분홍, 팥죽색, 옅은 하늘색, 흰색, 미색 갖가지 한복의 뒷모습들. 손을 모으고 겸손히 고개 숙인 옆모습들. 각양각색의 도포를 입은 선비와 중인들과 노비까지. 그리고 색색의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여인들과 천사 같은 아이들 모습도 보였다. 그들은 저마다 손에 묵주를 꼭 쥐고 천상의 미소로 하느님을 찬미했다. 예배소에 오면 먼저 건넌방에 만들어 놓은 고해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지난 며칠 간 알고 모르고 지은 죄를 하늘에 고했고 죄 사함을 받았다. 미사시간이 되자 모두 무릎 꿇고 한 곳을 보았다.
그곳에서는 하느님아버지 앞에 만인이 평등했다. 모두 한 형제요 자매였다. 그것은 양반과 천민의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획기적인 복음이었다. 모두 하느님 앞에 죄인이었고 어린양이었다. 문간에는 다양한 신분을 말해주는 신발들이 빼곡했다. 그것들은 미사를 마치고 나올 주인들을 얌전히 기다렸다. 하늘의 말씀을 숭배했던 그들의 시간은 영원할 듯 보였다. 그렇게 평화와 축복이 가득한 7년이 흘렀다.
1781년(정조 5) 3월 24일,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서울에 도착했다. 목을 빼고 기다리던 이벽은 그 길로 이승훈을 찾아갔다. 이벽은 이승훈에게 천주교 교리서를 전해 받았다.
“고생하셨습니다. 북경에 사는 천주학교우들 소식 좀 들려주세요.”
이벽은 천주교 교리서를 읽기위해 외진 곳에 방을 구했다. 골방에 틀어박혀 본격적으로 교리 연구에 돌입했다. 그렇게 보름의 시간이 흘렀다. 이승훈이 가져온 천주교 교리서를 탐구한 이벽은 이미 다른 세상에 들어서 있었다.
골방에 살던 이벽은 죽은 누이의 1주기 제사에 참석차 마재로 갔다. 제사를 마친 이벽은 사돈 정약용 정약전 형제와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배에 올랐다. 달빛이 물에 어리는 새벽, 배 위에서 이벽은 정약용 형제 곁에 앉았다. 선상에서 끝없이 이어진 이벽의 설교에 정약용의 눈에도 새벽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정약용은 이벽의 설교를 들으며 속으로 탄복했다.
‘천지조화의 시초와 형신(形神) 생사(生死)의 이치가 실로 놀랍구나. 내가 지금 정신이 멍하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은하수를 보는 것 같구나.’
배가 나루에 당도할 때까지 이벽의 천주학 열정은 뜨거웠다.
그곳에서는 하느님아버지 앞에 만인이 평등했다. 모두 한 형제요 자매였다. 그것은 양반과 천민의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획기적인 복음이었다. 모두 하느님 앞에 죄인이었고 어린양이었다. 문간에는 다양한 신분을 말해주는 신발들이 빼곡했다. 그것들은 미사를 마치고 나올 주인들을 얌전히 기다렸다. 하늘의 말씀을 숭배했던 그들의 시간은 영원할 듯 보였다. 그렇게 평화와 축복이 가득한 7년이 흘렀다.
1781년(정조 5) 3월 24일,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서울에 도착했다. 목을 빼고 기다리던 이벽은 그 길로 이승훈을 찾아갔다. 이벽은 이승훈에게 천주교 교리서를 전해 받았다.
“고생하셨습니다. 북경에 사는 천주학교우들 소식 좀 들려주세요.”
이벽은 천주교 교리서를 읽기위해 외진 곳에 방을 구했다. 골방에 틀어박혀 본격적으로 교리 연구에 돌입했다. 그렇게 보름의 시간이 흘렀다. 이승훈이 가져온 천주교 교리서를 탐구한 이벽은 이미 다른 세상에 들어서 있었다.
골방에 살던 이벽은 죽은 누이의 1주기 제사에 참석차 마재로 갔다. 제사를 마친 이벽은 사돈 정약용 정약전 형제와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배에 올랐다. 달빛이 물에 어리는 새벽, 배 위에서 이벽은 정약용 형제 곁에 앉았다. 선상에서 끝없이 이어진 이벽의 설교에 정약용의 눈에도 새벽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정약용은 이벽의 설교를 들으며 속으로 탄복했다.
‘천지조화의 시초와 형신(形神) 생사(生死)의 이치가 실로 놀랍구나. 내가 지금 정신이 멍하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은하수를 보는 것 같구나.’
배가 나루에 당도할 때까지 이벽의 천주학 열정은 뜨거웠다.
그 일이 있고 십여 일이 흘렀다.
정조는 성균관 제생들에게 ‘중용’에 대한 70가지 질문에 답할 것을 명했다. 정약용의 본격적인 중용 학습이 시작되었다. 이벽은 정약용의 안내자 역할을 맡았다. 두 사람은 하나하나 중용에 대해 토론하며 답을 적었다. 이벽의 높은 식견에 정약용은 또 한 번 놀랐다. 정조가 내린 70가지 질문에 정약용은 이벽의 강의를 참고해 중용에 대한 답을 제출했다. 정조는 새로운 의견을 제출한 정약용의 의견을 칭찬했다. 정약용은 그 후 이벽을 더욱 신뢰했다. 정약용은 이벽의 천주학에 한층 더 빠져들었다.
정조는 성균관 제생들에게 ‘중용’에 대한 70가지 질문에 답할 것을 명했다. 정약용의 본격적인 중용 학습이 시작되었다. 이벽은 정약용의 안내자 역할을 맡았다. 두 사람은 하나하나 중용에 대해 토론하며 답을 적었다. 이벽의 높은 식견에 정약용은 또 한 번 놀랐다. 정조가 내린 70가지 질문에 정약용은 이벽의 강의를 참고해 중용에 대한 답을 제출했다. 정조는 새로운 의견을 제출한 정약용의 의견을 칭찬했다. 정약용은 그 후 이벽을 더욱 신뢰했다. 정약용은 이벽의 천주학에 한층 더 빠져들었다.
“허허, 이거야 원! 이벽을 이대로 둬선 안 되겠군.”
이가환은 이벽을 찾아갔다. 이가환은 남인계에서는 서학의 일인자였다. 서양철학과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었지 진실한 신앙은 아니었다. 이가환은 이벽을 만나 사흘 간 논쟁했다. 그것은 전투에 가까운 토론이었다. 그 논쟁은 이벽의 완승으로 끝났다. 1784년 9월, 이벽은 양근의 감호를 방문했다. 그의 다음은 권철신이었다. 이벽은 권철신이 천주교로 넘어오면 그 파급력이 클 것이라 기대했다. 이벽의 설득에 얼마 못 가 권철신의 동생 권일신은 모든 가족과 친구와 중인들까지 천주에 입교시켰다.
1785년 봄.
긴 겨울이 끝나고 들판에 꽃과 나비가 날았다. 천주학 복음도 그렇게 비밀리에 세상을 수놓았다. 이벽은 명례동 김범우 집에서 정기적으로 모였다. 김건우의 집에서 청건(靑巾)을 쓴 이벽의 주재로 미사가 진행됐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의미로 얼굴에 흰 재를 발랐다. 이벽은 하늘색을 아버지가 계신 하늘의 상징으로 삼고 미사 때마다 청색 모자를 썼다. 그렇게 하면 천주와 통하고 하늘과 더 가까이 연결된다고 믿었다. 미사의 마지막 순서가 다가왔다. 고개 숙인 신자들에게 이벽이 두 손을 올려 뜨겁게 축복했다.
긴 겨울이 끝나고 들판에 꽃과 나비가 날았다. 천주학 복음도 그렇게 비밀리에 세상을 수놓았다. 이벽은 명례동 김범우 집에서 정기적으로 모였다. 김건우의 집에서 청건(靑巾)을 쓴 이벽의 주재로 미사가 진행됐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의미로 얼굴에 흰 재를 발랐다. 이벽은 하늘색을 아버지가 계신 하늘의 상징으로 삼고 미사 때마다 청색 모자를 썼다. 그렇게 하면 천주와 통하고 하늘과 더 가까이 연결된다고 믿었다. 미사의 마지막 순서가 다가왔다. 고개 숙인 신자들에게 이벽이 두 손을 올려 뜨겁게 축복했다.
“네가 사람됨은 재로 만든 것임을 기억하라. 어제 재에서 나서, 내일에는 반드시 재로 돌아가리라. 천주께서 재로 정신의 병을 치료해주시리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벽은 천주의 약제와 천주의 말을 빌렸고 재를 신도들 이마에 찍었다.
“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세하기가 모두 재와 같을 뿐이라. 천주께서 이 재를 가지고 사람의 몸을 만드셨으니, 그 몸은 얼마 못 가 또 재로 돌아갈 것임을 기억하여라. 대개 성회(聖灰)란 영혼의 거룩한 약제(藥劑)이니, 각 마음의 병을 능히 낫게 해줄 것이로되…….”
집회는 이듬해까지 이어졌다.
어느 날이었다. 주변을 순찰하던 포졸들이 김건우의 집에 모인 다수의 신발을 수상히 여겼다. 포졸들은 김건우의 집을 신속히 포위하고 방문을 거칠게 열었다.
“남녀가 유별한데, 지금 한 공간에 모여 뭣들 하는 것이냐? 도박한 것이냐? 이자들을 모두 묶어라!”
그들은 모두 포박되어 형조로 압송되었다.
“저들은 흉악한 범죄자들이옵니다. 기존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위험세력이니 엄벌에 처함이 마땅한 줄 아뢰오.”
어느 날이었다. 주변을 순찰하던 포졸들이 김건우의 집에 모인 다수의 신발을 수상히 여겼다. 포졸들은 김건우의 집을 신속히 포위하고 방문을 거칠게 열었다.
“남녀가 유별한데, 지금 한 공간에 모여 뭣들 하는 것이냐? 도박한 것이냐? 이자들을 모두 묶어라!”
그들은 모두 포박되어 형조로 압송되었다.
“저들은 흉악한 범죄자들이옵니다. 기존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위험세력이니 엄벌에 처함이 마땅한 줄 아뢰오.”
그날 이벽의 교설(敎說)을 듣던 이승훈과 정약용 형제도 함께 끌려갔다. 권일신 부자도 모두 체포되어 형조로 끌려갔다. 그러나 형조판서 김화진은 장소를 제공한 김범우만 투옥하고 다른 이들은 풀어주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집안은 결코 진정될 수 없었다. 사돈 양가 부친의 노력으로 이승훈과 정약용 형제는 다소 진정된 듯 보였다. 자신의 아들이 무리의 수괴로 알려지자 이부만은 펄펄 뛰었다.
“너! 이 자리서 정해라! 애비의 목숨이냐? 아니면 서학이냐? 당장 배교하지 않으면 나는 네 앞에서 목을 맬 것이다! 어서 배교하겠다고 말해!”
이부만은 자식 앞에서 목을 매는 소동까지 벌였다. 이벽은 키가 180㎝가 넘는 거구였다. 한 손으로 100근 무게를 너끈히 들어 올리는 장사였다. 외모로 풍기는 위엄도 있었다. 용모도 맑아 모든 이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어려서부터 고집이 세서 누구도 그를 꺾지 못했다. 이벽은 시달림에 지치고 속출하는 배교자에게 속았다. 자신 때문에 실망에 빠진 아버지를 보며 더는 정신을 지켜낼 수 없었다. 이벽은 점점 정신착란이 왔다. 그래도 명백하게 배교하는 것은 주저되었다. 그는 고민 끝에 두 가지 의미를 지닌 표현으로 자신의 신앙을 감추었다. 이벽은 우울과 극도의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러나 곧 안정을 되찾고 건강을 회복해갔다.
“아버님, 소자 마음을 다잡고 관직에 진출하겠습니다.”
이벽의 놀라운 다짐에 가족들을 다소 안심했다. 그 사건이 있고 난 초여름이었다. 6월말 마을에 갑자기 역병이 돌았다. 이벽의 쇠잔해진 육신에도 역질이 스며들었다.
“이불을 가져오너라! 급히 땀을 내야 산다. 이불 가져와. 어서!”
가족들은 이벽에게 땀을 내게 하려고 이불을 뒤집어 씌웠다. 이벽은 이불을 쓰고도 땀구멍이 열리지 않았다. 이벽은 이불 속에서 질식사로 삶을 놓고 말았다. 1785년 7월초의 일이었다. 역질을 앓은 지 8일만이었다. 이벽의 죽음으로 천주교 신앙인들은 믿음이 깊은 목자를 잃었다. 이벽의 갑작스럽고 비극적인 소식이 정약용에게 전해졌다. 비보를 접한 정약용은 충격을 견딜 수 없었다. 1785년 7월, 이벽은 그렇게 홀연히 떠나갔다. 이벽이 죽자 모두는 선장을 잃은 듯 슬펐다. 정약용에게 이벽은 천주학의 황홀한 세계를 보여주던 스승에 가까웠다.
정약용은 골방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채워갔다. 문밖은 눈이 그쳤다. 지붕에서 녹은 눈이 마당에 떨어져 방울방울 말줄임표를 그었다. 정약용이 들려주는 마지막 이야기가 한지에 적혔다
“그때 내가 죽고, 얼마의 세월이 흐른 것일까요. 나는 지금도 가끔, 광암 선생과 (함께 천진암과 주어사를 찾아갑니다. 세월의 무상 속에 천진암과 주어사는 많이 변했더군요. 쇠로 된 신기한 마차를 보았습니다. 그것이 엉덩이로 흰 구름을 뿜으며 달리는 모습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날개 달린 금속이 하늘을 새처럼 나는 것도 보았지요. 천진암 계곡에서 누군가 그것을 드론이라고 부르더군요. 그것은 굉음을 내며 상공에서 잠자리처럼 상하좌우로 날았습니다. 그 요상한 것이 나를 따라오는 듯도 했으나 아닐 것입니다. 그들 눈에 내가 보일 리 없지요. 그러나 더러 누군가는 천진암 계곡에서 또는 주어사 오솔길에서 나와 광암을 보았다고 하더군요. 더러는 아니라고, 다산과 광암은 이미 죽었고 긴 세월이 흘렀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웅성거리더군요. 그대는 알지요? 답은 그들 각자의 가슴 속에 있을 것을요. 나와 광암 선생은 그저 우리의 길을 갔습니다. 들리나요? 이제 문 밖의 폭설은 그쳤습니다. 나도 이만 하늘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나는 이번 이야기의 마지막을 말씀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그대는 나의 생전 세례명을 아나요? 네, 요한입니다.
(마태오복음 17:17)
아픈 아이를 품에 안은 아버지는, 드디어 예수님께로 왔어요.
‘주여, 할 수 있거든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그 때 예수께서 ‘믿음이 없는 자여! 내가 너희와 얼마나 같이 있어야 하겠느냐?’ 개탄하시고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책망하셨지요. 오늘 그대가 믿고 있다면, 나도 광암 선생도 그대 안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고개 들면 바로 그 곳에, 내가 서 있습니다. 그대 잘 지내다 하늘에서 다시 만납시다. 그때는 우리 더 많은 이야기로 천상에서 밤을 새워도 좋겠습니다. 저기, 하늘 문이 열립니다. 내게 오라 손짓하십니다.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안녕.”
아픈 아이를 품에 안은 아버지는, 드디어 예수님께로 왔어요.
‘주여, 할 수 있거든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그 때 예수께서 ‘믿음이 없는 자여! 내가 너희와 얼마나 같이 있어야 하겠느냐?’ 개탄하시고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책망하셨지요. 오늘 그대가 믿고 있다면, 나도 광암 선생도 그대 안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고개 들면 바로 그 곳에, 내가 서 있습니다. 그대 잘 지내다 하늘에서 다시 만납시다. 그때는 우리 더 많은 이야기로 천상에서 밤을 새워도 좋겠습니다. 저기, 하늘 문이 열립니다. 내게 오라 손짓하십니다.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안녕.”
천진암과 주어사 뜨락.
정약용과 이벽이 두 공간에 동시에 나타났다. 흰 도포를 입은 둘은 뒷짐 지고 대화하며 나란히 걸었다. 그때 갑자기 휙, 바람이 불었다. 그 순간 둘은 구름 속으로 아득히 사라졌다. 누구는 그들을 보았다 했고 누구는 그럴 리 없다고 했다.
정약용과 이벽이 두 공간에 동시에 나타났다. 흰 도포를 입은 둘은 뒷짐 지고 대화하며 나란히 걸었다. 그때 갑자기 휙, 바람이 불었다. 그 순간 둘은 구름 속으로 아득히 사라졌다. 누구는 그들을 보았다 했고 누구는 그럴 리 없다고 했다.
-끝-
스토리원고 | | | 김명희 작가 |
연구원고 | | | 김보름(안양대) |
일러스트 | | | 컬처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