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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암 안정복의 우리 역사 이야기-동사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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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전시기간 2012-11-30(금) ~ 2013-03-17(일)
장소 1층 기획전시실, 로비 기획 실학박물관 주최주관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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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은 실학자 순암 안정복이 태어난 지 300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을 개최
- 안정복의 저서《동사강목》등 80여점의 유물을 전시
- 이번 전시를 통해 가난한 선비가 책을 모아 읽으며 가슴에 벅찬 것을 글로 풀어내어 조선 최대의 역사서 『동사강목(東史綱目)』이 만들어지는 여정을 전시로 재현함
- 방대한 독서와 치밀한 연구를 통해 수많은 저작을 남긴 안정복은 다른 사람의 책을 빌려 손으로 직접 베껴 독서바구니(초서롱)에 쌓아두고, 그 책들을 참고로 직접 편찬하고 지은 자료를 저서바구니(저서롱)에 보관하면서 생각하고 실천하는 실학자의 서재를 완성
- 특별체험 프로그램/
- 1) ‘신 동사강목 만들기’ : 역사신문 만들기 체험
- 2) ‘역사 체험 연극’ : 안정복의 일생을 연극을 통해 체험
- 상설체험 프로그램/
- 1) ‘동사강목 퍼즐맞추기’ : 삼국시대 금석문과 동사강목의 내용을 비교하고 탁본을 활용한 자석퍼즐 맞추기 체험
- 2) ‘동사강목 인물열전’ : 동사강목에 나오는 역사 인물들에 대한 논평 찾아 읽기
- 순암 안정복 탄신 3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 2012. 11. 2(금) 한국프레스센타 19층 10:00~18:00
- 2012. 11. 3(토) 실학박물관 강당 13:30~17:30
전시 주요내용1. 순암, 역사와 실학의 고장 광주안정복의 고향은 경기도 광주 텃골(현재 광주 경안면慶安面 덕곡리德谷里)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억력, 암기력이 뛰어났는데 할아버지의 잦은 관직 이동과 아버지 안극(安極, 1696 -1754)의 입지에 따라 오랜 동안 정주지가 일정하지도 않은 환경 때문에 일정한 스승이나 사문(師門)도 없이 학문을 시작했다. 경학(經學)은 물론, 역사·천문·지리·의약 등에 걸쳐 폭넓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여 15~6세에는 매우 해박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젊은 시절 독학으로 공부를 계속했으나, 한계에 부딪치자 35세라는 늦은 나이에 성호 이익의 문하로 들어갔다. 이 후 평생 역사학과 백과전서학 분야에 수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가 되었다.2. 간찰에 나타난 순암의 인간 형상이번 실학박물관 기획전시회에서 집중 조명되는 그의 편지글에는 학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면모를 살필 수 있다. 아들에게 준 글에서 행실과 공부를 일치하고 친구 사귀는 법까지 자상하게 가르친다. 여자도 글 공부를 하라는 편지는 당시에는 다른 선비에게는 보기 드문 부분이다. 스승인 성호와도 생전 3번 남짓의 만남이 있었고, 나머진 주로 편지를 통하여 소식과 학문을 교환하였는데, 예론(禮論)을 비롯하여 경전 및 역사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3. 관직생활과 목민의 실천안정복이 제시하는 목민관이란 민심을 제대로 읽고 백성을 잘 살게 해야 하고, 실정에 맞는 토지제도와 지방자치안을 실천하는데 핵심이 되는 존재였다. 1776년(65세) 목천현감에 부임한 그는 녹봉을 줄여서 고을 안의 굶주린 백성들을 진휼하였는데, 2월부터 4월에 이르기까지 진휼한 자가 2천여 명이었다고 한다. 안정복의 목민 사상은 <임관정요>에 잘 나타나 있다.4. 순암의 공부법, 저술방식 – 초서롱과 저서롱관직에서 은퇴한 후에는 고향 덕곡리에 돌아와 영장산靈長山 아래 이택재麗澤齋에서 강학을 펼쳤다. 안정복은 평생 동안 그 많은 저술을 내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집안에 초서롱抄書籠과 저서롱著書籠을 비치해 두고, 남의 저작을 베낀 것은 초서롱에, 직접 지은 글을 저서롱에 담아 두었다고 한다.
내 몸에 깊은 병이 있는데 / 독서를 좋아하는 것 버리지 못해 / 매번 기이한 책 있다는 소리 들으면 / 모든 수를 써서라도 꼭 구한다네 / 이미 책을 살 돈은 없으니 / 책을 베껴 쓸 수밖에 없네 / 종일토록 머리 수그리고 앉아서 / 등불 켜고 밤중까지 계속하네 / 파리머리처럼, 지렁이 기듯 쓰지만 / 한 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네 / 힘에 부치면 남의 손까지 빌려서 / 그 책 다 베끼고 끝맺었네 /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졌기에 / 스스로 보면 볼수록 진귀하다네(중략)
– 초서농에 쓰다.
당시 학자들이 거부했던 하학(下學) 공부와 ‘회의(懷疑)-토론(討論)’의 공부법을 안정복은 받아들였다. “의문난 점을 스스로 해석해서 새롭게 알아질 때 학문의 진전이 있다”는 북송北宋대 학자 장재張載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스승의 뒤를 이어서 회의(懷疑)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이익(李瀷)을 배우는 성호학파의 학습법은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그 즉시 메모하는 질서법(疾書法)과 동학(同學)이 서로 절차탁마하는 이택법(麗澤法)을 기반으로 한다.
귀중한 고전 자료로 손꼽히는 그의 편찬물(編纂物)들은 모두 이러한 저서농과 초서농 속에서 나오게 된 것인데, 전자를 대표하는 책이 백과사전 성격의 『잡동산이(雜同散異)』라면 후자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동사강목』인 것이다.5. 《동사강목》, 우리의 역사를 정립하다.실학자들의 역사 연구는 인식과 방법의 측면에서 이전과는 크게 달랐다. 우선 그들은 역사를 경학(經學)에 종속된 것으로 보았던 성리학자들과는 달리 역사학의 독립성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전통적인 화이관(華夷觀)에서 벗어나 자국사를 중시하고 그것을 체계화하였다. 특히 자료의 수집과 사실의 고증, 특히 역사지리의 고증의 측면에서 성과가 컸다.
1) 역사 서술의 동기
안정복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등 기존의 역사책이 제대로 역사를 기술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다. 그가 『동사강목』을 쓰게 된 계기는 기존의 역사인식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였다.
‘대개 사학의 방법은 정통을 밝히고 시비를 바로잡아 충절을 칭찬하는 것과 제도와 문물을 상세히 하는 것’이라 하여 기존 관찬 · 사찬 역사서의 오류를 지적한 후, 계통(系統)을 바르게 밝히고 사실 고증에 충실한 역사서를 저술하고자 하였다. 또한 안정복은 우리역사를 새로 정리하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나라의 역사서도 두루 갖추어져 있으니, ………. 그러나 《삼국사기》는 소략하여서 사실과 어긋나고, 《고려사》는 번잡하여 요긴함이 적을 뿐 아니라 《삼국사기》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여 만들었으므로 국읍과 산천을 고거(考據)할 데가 없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에는 원근을 전도하고 남북을 바꾸어 놓았으니 믿을 수 있는 역사책이라고 하겠는가? 내가 이를 읽어 보고는 개탄하면서 드디어 고쳐서 바로잡을 뜻을 품게 되었다.“
2) 역사 서술의 5가지 원칙
안정복은 기존 사서의 불완전함과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역사 서술의 중요한 원칙으로서 다음의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 ① 우리 역사학의 정통체계를 세울 것- 단군조선, 삼한정통론三韓正統論
- ② 강역을 먼저 바로 세우고 역사를 서술할 것
- ③ 의리와 도덕에 입각해 시비를 바르게 내릴 것
- ④ 찬탈자와 반역자를 엄하게 평할 것
- ⑤ 역대의 법제를 상세히 살필 것 등이다.
3) 역사연구의 방법론 – 사실의 고증
역사연구의 방법론에 있어서도 사실고증을 철저히 하여 보다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방향으로 우리 역사를 서술하려고 한 흔적들이 『동사강목』 곳곳에 나타나 있다. 안정복은 단군에서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실들을 새 자료에 의해 보완하고 나아가 이설(異說)들을 새롭게 고증하고, 보충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는 주를 달아 기록하여 자신의 견해를 나타냈다.
4) 발해사의 발견
안정복은 발해사를 최초로 한국의 역사로 보았다. 이러한 그의 경향은 유득공의 《발해고》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고구려-발해-고려만을 정통으로 보지 않고 신라 역시 정통으로 보는 등의 균형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5) 안정복 역사학의 평가
스승 성호 이익이 근래 쓸만한 역사책(교과서)가 없으니 제대로 한번 집필해 보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였는데, 그에 대한 결과물로 순암이 만든 책이 《동사강목》이고, 윤동규가 만든 것이《사수변(四水辨》 이라는 책이다. 《동사강목》에서 그는 과거의 역사와 지리학을 비판하고, 우리 역사의 정통성과 자주성을 내세웠다.
그의 역사공부는 그의 나이 30세를 전후하여 크게 향상되어 중국 역사나 우리 나라 역사에 대한 지식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 앞서 보았듯이, 미완성이긴 하지만 20대에 「독사상절」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가 생전에 남긴 역사 저술은 『동사강목(東史綱目)』을 비롯하여 『열조통기(列朝通紀)』, 『동사보궐(東史補闕)』,『동국일사외기(東國逸事外記)』,『동사문답(東史問答)』,《사감》등이 있다.
이상과 같은 안정복의 역사서술은 근대 계몽기의 박은식 · 장지연 · 신채호 등 민족사학자들에게 학문적 · 사상적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현대사학에도 그 기저가 되고 있는 것이다.
특별전시
순암 안정복의 우리 역사 이야기-동사강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