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金正喜(1786~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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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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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경주. 자 원춘元春, 호 추사秋史·완당阮堂·예당禮堂·시암詩庵·노과老果· 농장인農丈人·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등
1786년(정조 10)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안면 용궁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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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순조 1) | 박제가朴齊家의 문하에서 수학 |
1809년(순조 9) |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다녀옴 청나라 고증학자 완원阮元·옹방강翁方綱·조강曹江 등과 교유 |
1816년(순조 16) | 진흥왕순수비를 발견하고 고증. 『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저술 |
1818년(순조 18) | 해인사 중건 상량문 씀. 경학과 금석학金石學에 몰두 |
1819년(순조 19) | 문과 급제. 예문관 검열, 규장각 대교, 충청우도암행어사, 예조참의, 병조참판, 형조참판 등 역임 |
1830년(순조 30) | 아버지가 연루된 사건으로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다가 복직 |
1840년(헌종 6) | 윤상도尹尙度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9년간 제주도 귀양. 추사체秋史體 완성 |
1851년(철종 2) | 영의정 권돈인權敦仁의 일에 연루되어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 |
1852년(철종 3) | 『예당금석과안록禮堂金石過眼錄』저술. 조선 금석학파 성립 시킴 |
1856년(철종 7) | 과천果川에서 별세. 『완당집阮堂集』(1868) 남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