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백규魏伯珪(1727~1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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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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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장흥長興. 자 자화子華, 호 존재存齋·계항桂巷·계항거사桂巷居士
1727년(영조 3) | 전라도 장흥長興에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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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3년(영조 19) | 문과 급제. 승문원 권지부정자 이후 도승지, 대사헌, 형조․병조판서 역임 |
1751년(영조 27) | 충청도 덕산德山으로 호론계湖論系 산림山林인 윤봉구尹鳳九를 찾아가 수학 |
1765년(영조 41)/th> 진사시 합격한 이후 과거 단념하고 귀농歸農함 | |
1769년(영조 45) | 『고금古琴』, 경세학적 정론서인『정현신보政絃新譜』저술 |
1770년(영조 46) | 경학 저술 및 세계지리서인『환영지寰瀛誌』저술 |
1792년(정조 16) | 『논어차의論語箚義』·『격물설格物說』저술 |
1796년(정조 20) | 국왕을 알현謁見하고 시폐時弊를 바로 잡을 정론으로『만언봉사萬言封事』를 올림. 옥과현감玉果縣監 |
1798년(정조 22) 별세. | 『존재집存齋集』(1875) 남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