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李瀷(1681~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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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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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여주驪州. 자 자신自新, 호 성호星湖
1681년(숙종 7) | 아버지 하진夏鎭 유배지인 평안도 운산雲山 출생. 이듬해 아버지를 여의고 선영先塋이 있는 경기도 안산安山의 첨성리瞻星里로 돌아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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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년(숙종 31) | 문과에 응시하였다가 녹명錄名이 격식에 맞지 않아 회시會試에 응할수 없게됨. |
1706년(숙종 32) | 둘째 형 잠潛이 노론老論을 비판하다 장살杖殺당한뒤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 몰두. |
1711년(숙종 37) | 윤동규尹東奎가 문하에 들어옴. |
1713년(숙종 39) | 『맹자질서孟子疾書』저술. |
1715년(숙종 41) | 『사칠신편四七新編』저술. 이익의 명성을 듣고 각 지역으로부터 학사學士들이 모여듬. |
1724년(경종 4) | 신후담愼後聃이 문하에 들어옴. |
1727년(영조 3) |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음. |
1731년(영조 7) | 『가례질서家禮疾書』저술. |
1734년(영조 10) | 신후담이 『사칠신편』의 ‘성현지칠정聖賢之七情’ 문제를 제기해와 여러 차례 토론. |
1746년(영조 22) | 안정복安鼎福이 문하에 들어옴. |
1747년(영조 23) | 『역경질서易經疾書』, 『이자수어李子粹語』저술(1753) |
1760년(영조 36) | 『성호사설星湖僿說』저술 |
1763년(영조 39) | 안산에서 12월에 별세. 『곽우록』․『성호집星湖集』(1774)을 남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