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스크랩하기
인쇄하기
즐겨찾기
퍼가기
카카오톡으로 퍼가기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새로 여는 하늘 땅, 세계–성호 이익의 실학
기간/ 2013.04.26(금) ~ 2013.09.22(일)
장소/ 실학박물관 기획전시실
성호 이익(1681∼1763)은 실학의 종장으로 불리는 학자이다. 그는 부친이 당쟁으로 희생된데다 둘째형마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죽음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벼슬에 나가지 않고 오직 학문에 전념하여 실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저술은 평생에 걸쳐 유교 경전에 대한 연구 성과를 정리한 《맹자질서孟子疾書》등 경전에 대한 연구들, 민생의 대책과 제도개혁 방안을 체계화한 《곽우록藿憂錄》, 40세부터 83세까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그때 그때 기록한 학문노트인 《성호사설星湖僿說》이 대표적이다.
전시내용
조선후기 주체적 입장에서 서양문화를 이해 수용한 성호 이익의 실용과 개척 정신을 전시로 연출
우주와 땅을 상징하는 천문도와 세계지도 등 50여종의 유물 전시
전시진행
상 반 기 : 실학박물관 특별전시실(2013. 4. 26 ~ 9.22)
하 반 기 : 안산시 성호기념관 전시실(2013. 10. 1∼12.31)
주최
안산시 성호기념관,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
상설체험 프로그램
1) 탁본 체험 ‘경세치용, 실학의 정신’ ‘성호 이익의 시’ : 전시 주제에 맞는 주제를 선정하여 어린이 청소년들이 탁본을 통해 전시를 체험하게 함
2) ‘퍼즐 맞추기’ :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유물 이미지를 퍼즐로 제작하여 관람객들에게 체험을 제공함
개막식 일정
일 시 : 2013. 4. 30(화) 15:00
장 소 : 실학박물관 로비
참석대상 : 성호학회 등 학술단체, 실학자 종손 및 후손 200명 내외
학술내용
1. 프롤로그 “절대관념을 깨고 객관적 사실의 세계로” – 과학적 사유를 개척한 성호 이익
성호 이익은 조선후기 주체적 입장에서 서양 문화를 수용하여 현실의 문제점을 타개하고자 했던 학자였다.
관념화된 주자학을 대체하여 새로운 개혁안을 모색했던 이익은 당시 조선에 도입되었던 서양 학문의 실용성을 주목하였다.
서양의 자연과학은 이익에게 과학 세계로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과 방법을 제공해 주었다. 천지만물 각각에 내재한 원리를 탐구하며 관념을 넘어선 객관적 사실의 세계로 나아갔던 것이다.
‘잡학雜學’이라 경시하던 세상만물에 대해 이익은 ‘비록 작은 도道라도 반드시 볼만한 것이 있다’라는 실용적 관점위에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가 40여년에 걸쳐 집필한 《성호사설》 전편에 흐르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는 바로 개별 사물의 이치를 규명해 나갔던 과정이었다.
바다의 물결이 또 다른 파도를 일으키듯이 하늘과 땅, 그리고 세계에 대해 과학적 사유의 길을 열었던 이익의 학문이 실학의 바탕이 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2. 우주와 세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
1) 서양 자연과학[서학]의 수용
16세기 후반이래 서양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 등은 중국에 들어오게 된다. 이들은 선교의 일환으로 천주교와 서양의 자연과학 서적을 중국어로 번역한 한역서漢譯書를 다수 간행하였다. 조선에서 간 사신단 일행은 이 책들을 조선에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이익의 부친 이하진李夏鎭은 1678년 중국 사신으로 북경에 갔을 때 수천권의 서적을 구입하여 귀국하였다. 그 가운데 서학서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익은 바로 이 책들을 통하여 서양과학을 접하였다.
이익의 문집과 《성호사설》에서 확인되는 서학서는 《천주실의》,《직방외기》 등 약 20여종이 이른다. 이 책들을 통해 이익은 서양의 자연과학을 주체적으로 학습했고 인식 전환의 계기를 삼을 수 있었다.
2) 새로운 학문의 세계로
이익은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학문에 관심을 가졌다. 그 가운데 새로운 자연과학적 지식을 제공한 것은 서학西學이었다.
그는 기존 유학의 학습과정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서양의 과학 지식을 유학의 그것과 대비하여 각각의 차이와 우열을 탐구해 나갔다. 또한 제자들과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과학적 원리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하였다. 이를 통해 이익은 기존의 절대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었다.
이익과 제자들의 학문활동은 조선에서 사실·경험·관찰에 입각한 과학 연구의 전통을 수립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그 이면에는 현실을 개혁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을 갈구했던 학자들의 열망이 있었다.
3. 과학적 사유와 탐구
1) 천체 우주에 대한 인식
이익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天圓地方]”라는 전통적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하늘의 형태에 대해 “양파껍질같이 각각 겹쳐져 있는 하늘은 큰 수레바퀴 가운데 작은 수레바퀴가 있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하였다.
전통 우주론은 이익에 이르러 과학적 인식으로 전환하였다. 행성의 구조에 대해 태양과 달 그리고 지구의 크기가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파악했다. 서양 천문도는 망원경 등의 기구를 활용한 관찰의 결과이기 때문에 정교하다고 하였다. 우주 천체 현상을 관통하는 물리적 법칙을 믿었고 스스로 과학적 사유의 바탕을 삼았다. 이를 통해 이익은 하늘과 인간의 상호 작용을 강조하던 관념적 인식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2) 과학적 사유와 탐구 – 지구원형설의 수용
“땅은 모양이 탄환과 같고, 사람은 표면에 살면서 땅을 밟고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다.”
이익은 지구 원형설을 긍정하였다. “땅은 네모나다”라는 전통 관념을 벗어나 지구의 모양은 타원형이며 둘레는 9만리라는 서양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이미 마젤란 등의 세계일주에 의해 증명되었다고 하였다. 그 경험을 반영한 서양 세계지도에 대한 지식은 이익의 믿음을 확고히 하였다. 지구의 중심으로 쏠려 들어오는 힘[地心]은 지구원형설을 뒷받침해 주는 논거였다.
나아가 이익은 동서양 문명의 특성을 지구 원형설에 근거하여 설명하였다.
중국은 지구 위쪽의 정중앙에 위치한 지역[양]으로 ‘인물이 처음 생겨난 땅이요. 성현이 먼저 태어난 곳’이었다. 그 아래쪽 정중앙[음]은 구라파로 물질문명이 발전한 나라였다. 이익은 서양문화의 우수함을 인정하되 음양陰陽의 형이상학적 위계에 근거하여 동양보다는 한 수 아래라는 점을 동시에 설명했던 것이다.
4. 세계와 ‘나’의 재발견
1) 재이론 비판
“(일식은)모두 미리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중지시킬 수 있단 말인가? … 만일 정치적으로 잘못이 없다면 일식이 없었단 말인가? 이것은 위와 아래가 이유없는 사실을 가지고 서로 속이는 것이다.(《성호사설》 천지문)”
우주 천체에 대한 이익의 인식 변화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천재지변[재이災異]에 대한 이해 부분이었다.
옛날에 일식日蝕이 일어나면 임금이 현실 정치를 잘못한 탓이라 여겨 신에게 빌어 이를 중단시키려 한 사실을 비판하였다. 자연현상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인간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2) 중국은 대지 가운데 한조각 땅에 불과하다.
둥근 타원형의 지구와 세계에 대한 인식위에 이익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종래의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중국은 대지 가운데 한 조각 땅에 불과하다”라는 이익의 언급은 경험적 사실에 입각해 중국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초들이었다.
중화주의의 탈피는 이익 자신이 딛고 선 조선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 땅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고대 강역에 대한 역사 인식으로 나타났고, 조선 8도의 물산·풍습에 대한 관심은 실용적 차원의 인문지리적 성과로 계승되었다.
5. 개척의 학문, 실학의 길을 열다
16세기후반이래 이수광의 《지봉류설芝峯類說》에 기록되었듯 조선에 서양문화를 소개하려는 시도는 일부분 있어 왔다. 하지만 명청 교체의 격변과 조선의 보수적인 체제 고착으로 인해 단순한 관심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호 이익은 서양의 학문을 본격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주자학 외에 양명학, 고증학 등 다양한 사조를 탐구하며 경세치용학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서학西學을 주목하였던 것이다.
이익은 실증實證과 고증考證, 그리고 실용實用의 차원에서 서학에 접근하였다. 특히 서양의 천문·기계·수학 등 과학 분야의 성과는 동양에서 일찍이 도달하지 못했던 분야임을 인정하였다.
과학적 자각위에 이익은 주자학의 자연인식을 비판하였다. ‘한 글자라도 의심스럽게 여기면 망령되게 여기고 이것저것 찾아서 대조하면 죄’라는 주자학의 관념적 학문풍토를 넘어섰던 것이다.
또한 천지만물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인간과 사회, 나아가 세계관의 변화에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그와 교유했던 학자들은 드넓은 학문의 바다가 있었음을 깨닫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이익의 학문은 ‘완성의 학문’이라기보다는 ‘개척의 학문’이었다. 서양의 문화와 과학은 조선 학계의 내적 성숙에 의해 도입되기 시작하였고 그 출발점에 성호 이익이 있었다. 새로운 학풍에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성호星湖’라는 호수에서 시작한 끝없는 학문적 항해를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댓글 [0]
댓글달기
댓글을 입력하려면 로그인 이 필요합니다.
이전 다음 특별전시

콘텐츠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