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기가 그린 세계지도, 《지구전후도地球前後圖》
제작연도/ 조선후기
작가(출처)/ 최한기
- 실학시대의 대표적인 지리지, 《택리지擇里志》
- 1칸이 20리를 나타내는 지도인 《광주부지도廣州府地圖》
- 1칸이 1리를 나타내는 지도인 《영남지도嶺南地圖》
- 독일인이 그린 조선의 지도, 《 조선팔도지도朝鮮八道之圖》
- 19세기 중엽의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 정보를 담은 《해좌전도海左全圖》
-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목판
- 정상기가 그린 한반도 지도, 《동국대전도東國大全圖》
- 최한기가 그린 세계지도, 《지구전후도地球前後圖》
- 최한기가 저술한 세계의 자연·인문지리에 관한 책, 《지구전요地球典要》
- 조선에 전래된 세계지도, 곤여전도坤輿全圖
- 일본에 전래된 유럽의 지구의地球儀
- 실학자 최한기가 그려본 지구의地球儀
- 일본 실학자 미우라 바이엔의 천구의天球儀
- 실학시대의 별자리 지도, 천구의天球儀
- 조선에서 만든 천체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기구, 혼천의渾天儀
- 조선시대의 달력, 시헌력時憲曆
- 별자리의 위치를 통해 시간과 계절을 측정하던 평혼의平渾儀
- 박규수가 만든 천문관측기구, 간평의簡平儀
- 실학자가 만든 아라비아식 천문시계, 아스트로라브Astrolabe
- 동양과 서양의 하늘을 한 곳에 담은 천문도, 《혼천전도渾天全圖》
《지구전후도》의 전도와 후도
혜강 최한기崔漢綺(1803~1877)는 세계에 대해 특히 심이 많았던 실학자였습니다. 이 세계지도는 그가 만든 세계지도로 절친한 친구였던 고산자 김정호金正浩(?~1864)가 판각을 담당한 근대식 목판 지도입니다. 목판으로 만들었으니, 그만큼 대량생산이 되어 많이 보급되었겠지요. 이 세계지도는 19세기 초반부터 조선 지식인들의 세계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꾸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일명 〈지구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조선후기에 제작된 세계지도들이 대부분 8첩 병풍의 대형 지도인 반면, 이 지도는 매우 작은 지도입니다. 지구의 앞과 뒤의 모습을 그렸다고 하여 〈지구전후도〉라고 부릅니다. 페르비스트의 〈곤여전도〉처럼 두 개의 반구형 세계지도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지구전도〉에는 아시아, 유럽과 아프리카가 그려져 있고, 〈지구후도〉에는 남북아메리카가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곤여전도〉에 비해 일본과 동남아시아 일대가 전혀 다르게 묘사되어 있고, 캘리포니아 지역이 현재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섬의 모양으로 그려져 있으며, 남극의 존재를 인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지도는 조선에 팽배했던 중화적 세계관을 극복한 19세기 중후반의 사실적인 지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비록 동양적 세계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지도를 통해 우리는 당시 조선인이 얼마나 세계에 대해 심도 있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지도가 만들어진 이후로 더 이상 중화주의는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중국이나 조선이나 모두 이 세계의 일부라는 인식이 조선의 지식인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혜강 최한기崔漢綺(1803~1877)는 세계에 대해 특히 심이 많았던 실학자였습니다. 이 세계지도는 그가 만든 세계지도로 절친한 친구였던 고산자 김정호金正浩(?~1864)가 판각을 담당한 근대식 목판 지도입니다. 목판으로 만들었으니, 그만큼 대량생산이 되어 많이 보급되었겠지요. 이 세계지도는 19세기 초반부터 조선 지식인들의 세계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꾸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일명 〈지구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조선후기에 제작된 세계지도들이 대부분 8첩 병풍의 대형 지도인 반면, 이 지도는 매우 작은 지도입니다. 지구의 앞과 뒤의 모습을 그렸다고 하여 〈지구전후도〉라고 부릅니다. 페르비스트의 〈곤여전도〉처럼 두 개의 반구형 세계지도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지구전도〉에는 아시아, 유럽과 아프리카가 그려져 있고, 〈지구후도〉에는 남북아메리카가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곤여전도〉에 비해 일본과 동남아시아 일대가 전혀 다르게 묘사되어 있고, 캘리포니아 지역이 현재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섬의 모양으로 그려져 있으며, 남극의 존재를 인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지도는 조선에 팽배했던 중화적 세계관을 극복한 19세기 중후반의 사실적인 지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비록 동양적 세계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지도를 통해 우리는 당시 조선인이 얼마나 세계에 대해 심도 있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지도가 만들어진 이후로 더 이상 중화주의는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중국이나 조선이나 모두 이 세계의 일부라는 인식이 조선의 지식인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