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의 역사전쟁을 대비한 《발해고渤海考》
제작연도/ 1784년(정조 8)
작가(출처)/ 유득공
- 일본의 실학자 미우라 바이엔의 저술, 《현어玄語》와 현어도玄語圖
- 일본의 실학자 미우라 바이엔의 글씨
- 중국의 고증학자인 고염무의 문집, 《일지록日知錄》
- 평안도 용강과 서울의 여름·겨울의 길이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
- 박규수의 자주적인 개화사상을 모은 《환재집瓛齋集》
- 동양의 전통 사상과 서양의 선진사상을 융합하여 만든 독창적인 실학 사상,《기측체의氣測體義》
- 조선시대 인사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 《인정人政》
- 집안의 가학家學으로 전해진 백과사전 형식의 저술,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책을 좋아한 실학자 이덕무가 편찬한 백과사전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 농가農家를 위한 경제서, 《산림경제山林經濟》
- 조선 전국의 역사지리 정보를 담은 《대동지지大東地志》
- 고증학적인 방법론으로 한국사를 객관적으로 정리한 《해동역사海東繹史》
- 중국과의 역사전쟁을 대비한 《발해고渤海考》
- 우리나라 역대 서울을 시로 읊은 《이십일도회고시주二十一都懷古詩註》
- 고조선부터 고려까지의 역사, 《동사강목東史綱目》
- 한글을 독창적으로 연구하여 자모字母를 분류하고 해설한 책, 《언문지諺文志》
- 북한산 비봉碑峰의 비석이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힌 김정희의〈북한산순수비 발문北漢山巡狩碑跋文〉
- 농촌생활의 모든 정보를 담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상업과 유통의 발달을 위한 도로망의 정비, 《도로고道路考》
- 실용의 실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걸작, 《북학의北學議》
- 짙고 덥수룩한 턱수염을 가진 박제가, 박제가 초상朴齊家肖像
- 중국 열하熱河까지 몇 천리의 대장정, 《열하일기熱河日記》
- 박지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박지원 초상朴趾源肖像
- ‘우주무한론’을 펼친 홍대용의 《의산문답毉山問答》
- 다산의 부국강병의 꿈을 담은 《경세유표經世遺表》
- 동아시아의 최고의 목민서牧民書, 《목민심서牧民心書》
- ‘1천 가지의 개혁방안 중에서도 간혹 한 가지 정도는 쓸 만할 것이 있다’는 《천일록千一錄》
- 벼슬하지 않는 사람의 백성에 대한 걱정을 담은 《곽우록藿憂錄》
유득공의 《발해고》
‘발해渤海’는 699년 고구려 장수 대조영大祚榮이 세운 나라입니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는 한 때 고구려의 옛 영토보다 넓은 영토를 가지고 중국의 당나라와 겨루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1749~?)이 발해의 역사를 정리해 놓은 저술입니다. 대조영과 대문예大門藝 등 발해의 역대 왕에 대해 기록한 본기本紀, 83명의 문․무신과 학자들의 열전列傳, 5경 15부 62주의 지방제도를 수록한 지리고地理考, 발해의 복식服飾과 수도 동경의 모습을 정리한 의장고儀章考와 물산고物産考, 발해의 각종 칭호를 정리한 국어고國語考, 발해가 일본에 보낸 국서國書를 정리한 국서고國書考, 발해 멸망 후 그 유민遺民들이 세운 정안국定安國 등을 소개한 속국고屬國考 등이 그 내용입니다. 그는 고려가 발해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책과 《신당서新唐書》․《속일본기續日本紀》 같은 중국․일본의 역사책 24종류를 참고하여 《발해고》를 저술하였습니다. ‘고考’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체계적으로 사실을 갖추어 정리하지 못한 필자의 마음을 담은 표현입니다. 유득공은 발해가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분명히 밝혀 우리 역사 속으로 넣고, 통일신라와 병립한 시기를 ‘남북국시대南北國時代’로 규정하였습니다. 통일신라를 ‘남조南朝’, 발해를 ‘북조北朝’로 하는 남북조의 인식체계를 세운 것입니다. 이 책은 발해사를 독립적으로 다룬 유일한 책으로, 자주조南朝입장에서 발해사를 체계화시켜 우리 역사의 영역으로 확립함으로써 발해 고토故土가 우리 역사朝’영토라는 사료朝’근거를 제공하였습니다. 중국과의 역사전쟁을 예언하고 준비한 것은 아닐까요?
‘발해渤海’는 699년 고구려 장수 대조영大祚榮이 세운 나라입니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는 한 때 고구려의 옛 영토보다 넓은 영토를 가지고 중국의 당나라와 겨루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1749~?)이 발해의 역사를 정리해 놓은 저술입니다. 대조영과 대문예大門藝 등 발해의 역대 왕에 대해 기록한 본기本紀, 83명의 문․무신과 학자들의 열전列傳, 5경 15부 62주의 지방제도를 수록한 지리고地理考, 발해의 복식服飾과 수도 동경의 모습을 정리한 의장고儀章考와 물산고物産考, 발해의 각종 칭호를 정리한 국어고國語考, 발해가 일본에 보낸 국서國書를 정리한 국서고國書考, 발해 멸망 후 그 유민遺民들이 세운 정안국定安國 등을 소개한 속국고屬國考 등이 그 내용입니다. 그는 고려가 발해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책과 《신당서新唐書》․《속일본기續日本紀》 같은 중국․일본의 역사책 24종류를 참고하여 《발해고》를 저술하였습니다. ‘고考’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체계적으로 사실을 갖추어 정리하지 못한 필자의 마음을 담은 표현입니다. 유득공은 발해가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분명히 밝혀 우리 역사 속으로 넣고, 통일신라와 병립한 시기를 ‘남북국시대南北國時代’로 규정하였습니다. 통일신라를 ‘남조南朝’, 발해를 ‘북조北朝’로 하는 남북조의 인식체계를 세운 것입니다. 이 책은 발해사를 독립적으로 다룬 유일한 책으로, 자주조南朝입장에서 발해사를 체계화시켜 우리 역사의 영역으로 확립함으로써 발해 고토故土가 우리 역사朝’영토라는 사료朝’근거를 제공하였습니다. 중국과의 역사전쟁을 예언하고 준비한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