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기가 그린 한반도 지도, 《동국대전도東國大全圖》
제작연도/ 1755년(영조 3) ~ 1757년(영조 33) 추정
작가(출처)/ 정상기
- 실학시대의 대표적인 지리지, 《택리지擇里志》
- 1칸이 20리를 나타내는 지도인 《광주부지도廣州府地圖》
- 1칸이 1리를 나타내는 지도인 《영남지도嶺南地圖》
- 독일인이 그린 조선의 지도, 《 조선팔도지도朝鮮八道之圖》
- 19세기 중엽의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 정보를 담은 《해좌전도海左全圖》
-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목판
- 정상기가 그린 한반도 지도, 《동국대전도東國大全圖》
- 최한기가 그린 세계지도, 《지구전후도地球前後圖》
- 최한기가 저술한 세계의 자연·인문지리에 관한 책, 《지구전요地球典要》
- 조선에 전래된 세계지도, 곤여전도坤輿全圖
- 일본에 전래된 유럽의 지구의地球儀
- 실학자 최한기가 그려본 지구의地球儀
- 일본 실학자 미우라 바이엔의 천구의天球儀
- 실학시대의 별자리 지도, 천구의天球儀
- 조선에서 만든 천체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기구, 혼천의渾天儀
- 조선시대의 달력, 시헌력時憲曆
- 별자리의 위치를 통해 시간과 계절을 측정하던 평혼의平渾儀
- 박규수가 만든 천문관측기구, 간평의簡平儀
- 실학자가 만든 아라비아식 천문시계, 아스트로라브Astrolabe
- 동양과 서양의 하늘을 한 곳에 담은 천문도, 《혼천전도渾天全圖》
정상기의 《동국대전도》
우리나라에는 옛날부터 우수한 지도들이 있었습니다. 1463년에는 정척鄭陟(1390〜1475)과 양성지梁誠之(1415~1482)가 〈동국지도東國地圖〉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각 지역의 서울로부터의 방향과 거리가 부정확하고 국토의 윤곽이 이지러져있었습니다. 이러한 결함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지도를 작성할 수 있는 획기가 된 것이 1740년에 성호 이익李瀷이 극찬한 정상기鄭尙驥(1678~1752)의 〈동국지도〉 제작입니다. 그의 〈동국지도〉는 〈대전도大全圖〉와 〈팔도분도八道分圖〉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국지도〉는 세로 271cm 및 가로 139cm의 대형지도였을 뿐만이 아니라, 서울로부터의 각 지역의 거리와 방향이 정확하고 국토의 윤곽이 실제의 모양과 매우 비슷하였습니다. 정상기가 그런 지도를 제작할 수 있었던 요인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지도제작에서 백리척百里尺(약 1:42만)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1백리를 1척, 10리를 1촌로 하는 축척 기법인데, 방향과 거리에 관한 정확한 정보만 확보할 수 있어 실제에 가까운 지도를 작성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상기가 어디에서 이런 축척기법을 착상했을까요? 아직도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세계지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국지도」의 제작은 백리척의 도입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지도가 제작되기 위해서는 서울로부터의 각 지역의 거리와 방향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정보가 많이 축적되어 있었습니다. 1481년에 제작되어 1531년부터 활자본으로 보급된 《동국여지승람》과 1730년대에 제작되었다고 추측되는 〈해동지도〉가 대표적인 것입니다. 이 지도는 〈대동여지도〉보다 100년 앞서 만들어진 근대적 대형 전국지도(대축적전도)로, 〈대동여지도〉 제작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지도는 제작 당시의 전국지리 및 군사정보 등이 정밀하게 표시되어 있어 영조가 이를 열람한 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홍문관과 비변사에 옮겨 그려 비치도록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정상기의 〈동국대전도〉는 우리나라 국토를 원형에 가깝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옛날부터 우수한 지도들이 있었습니다. 1463년에는 정척鄭陟(1390〜1475)과 양성지梁誠之(1415~1482)가 〈동국지도東國地圖〉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각 지역의 서울로부터의 방향과 거리가 부정확하고 국토의 윤곽이 이지러져있었습니다. 이러한 결함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지도를 작성할 수 있는 획기가 된 것이 1740년에 성호 이익李瀷이 극찬한 정상기鄭尙驥(1678~1752)의 〈동국지도〉 제작입니다. 그의 〈동국지도〉는 〈대전도大全圖〉와 〈팔도분도八道分圖〉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국지도〉는 세로 271cm 및 가로 139cm의 대형지도였을 뿐만이 아니라, 서울로부터의 각 지역의 거리와 방향이 정확하고 국토의 윤곽이 실제의 모양과 매우 비슷하였습니다. 정상기가 그런 지도를 제작할 수 있었던 요인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지도제작에서 백리척百里尺(약 1:42만)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1백리를 1척, 10리를 1촌로 하는 축척 기법인데, 방향과 거리에 관한 정확한 정보만 확보할 수 있어 실제에 가까운 지도를 작성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상기가 어디에서 이런 축척기법을 착상했을까요? 아직도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세계지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국지도」의 제작은 백리척의 도입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지도가 제작되기 위해서는 서울로부터의 각 지역의 거리와 방향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정보가 많이 축적되어 있었습니다. 1481년에 제작되어 1531년부터 활자본으로 보급된 《동국여지승람》과 1730년대에 제작되었다고 추측되는 〈해동지도〉가 대표적인 것입니다. 이 지도는 〈대동여지도〉보다 100년 앞서 만들어진 근대적 대형 전국지도(대축적전도)로, 〈대동여지도〉 제작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지도는 제작 당시의 전국지리 및 군사정보 등이 정밀하게 표시되어 있어 영조가 이를 열람한 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홍문관과 비변사에 옮겨 그려 비치도록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정상기의 〈동국대전도〉는 우리나라 국토를 원형에 가깝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