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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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金堉(1580~1658)
admin - 2013.10.25
조회 2773

김육 초상(유복본)

본관 청풍淸風. 자 백후伯厚. 호 잠곡潛谷. 시호 문정文貞
1580년(선조 13) 서울 서부 마포리麻浦里 외가에서 출생
1594년(선조 27) 일찍이 조호익曺好益에게 배우고, 성혼成渾의 문인이 됨
1613년(광해 5) 경기도 가평 잠곡潛谷 청덕동淸德洞(청평유원지)에 은거, 농사와 독서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에 임금을 호종.
음성현감陰城縣監 재임 중 문과 급제. 사간원 정언
1627년(인조 5) 지평으로 평안·황해도의 민폐개혁을 위한「양서사의兩西事宜」올림
1637년(인조 14) 『조천일기朝天日記』저술
1638년(인조 16) 충청도관찰사로 대동법 시행 건의.
수차水車 보급,『구황촬요救荒撮要』와 『벽온방辟瘟方』보급
1644년(인조 22) 대사성으로 황해도와 평안도에 수레와 동전銅錢의 사용을 건의
1646년(인조 24)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중국에 가면서 시헌력 사용법을 배워옴 (1653년부터 시헌력 시행)
1649년(효종 즉위) 우의정에 발탁되자 삼남三南에 대동법의 시행을 건의
1650년(효종 1) 중국 사행길에 동전 유통을 건의하여 왕의 허락을 받는 한편, 중국 동전 15만문萬文을 구입하여 평안도에 유통
1651년(효종 2) 영의정으로 충청도의 대동법 시행 주관. 소전小錢과 십전통보十錢通寶를 주조
1653년(효종 4) 서울 회현방會賢坊으로 이주
1658년(효종 9) 서필원徐必遠을 전라감사로 추천, 전라도 연해읍에 대동법 시행
회현방 자택에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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