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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 특별전 《유배지의 제자들 – 다산학단》
기간/ 2014.06.24(화) ~ 2014.10.10(금)
장소/ 실학박물관 기획전시실

경기도 실학박물관(관장 김시업)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인 강진에서 결성된 다산학단의 활동을 살핌으로서 경기도 실학문화의 지역적 전파를 조명하는 특별전을 개최한다.

전시 일정은 2014. 6. 24∼10.10이다. 이 전시는 2015년 강진군 다산기념관과 공동 순회전시도 현재 협의 중에 있다.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실학사상은 지역적으로 확산하였다. 그 중심에 우뚝 선 인물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 그는 503권 182책의 거대한 저술의 탑을 쌓아올린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다산의 저술은 주로 강진 유배기에 이루어졌다. 현전하는 「여유당전서」 503권 182책은 한 인간이 평생 베껴쓰기만 하기에도 불가능한 분량이다. 또한 그 저작들은 방대하면서 조리정연하고 예리하다.

인간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저작의 탄생은 유배지 제자들과 함께 한 작업의 결실이었다. ‘복숭아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뚫리는 고통’을 이긴 다산의 학문적 열정과 헌신적인 제자들과의 공동 집체 저술은 한자문화권 최대의 저술을 이루어낸 것이다.

또한 「여유당전서」는 치열한 희망주의의 산물이었다. 개혁에의 이상과 철저히 괴리된 절망의 현실을 딛고 서서 다산은 강진의 학동들을 당당한 학자로 길러 내었다. 제자들은 스승의 학문 정신을 몸과 마음에 체득했고 이를 실천했다.

다산의 강진 제자들의 구성은 다양하다. 양반 자제와 함께 읍중 제자들(이속층) 그리고 일군의 승려들도 있다. 조선에서 사제 관계의 전통으로 보아도 매우 특기하다. 다산은 개인적 처지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사대부 뿐 아니라 신분이 낮은 여항인과 승려와 교유하며 사제의 연을 맺었다.

다산이라는 큰 나무아래에서 제자들은 각자의 자질과 개성에 따라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 천문학‧농학‧지리학·역사·기술·외교·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술을 남겼다.

스승이 유배에서 풀려 집으로 돌아갈 때 제자들은 ‘다신계’를 결성했다. 서로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모임을 개최하여 스승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새겼다.

이처럼 유배지의 제자들-다산학단은 위대한 학문적 성과를 쌓아 올렸다. 그리고 강진‧해남 등 먼 바닷가의 고을에 ‘문명향’이란 명예를 안겼다.

이번 전시는 다산학단 인물들의 유물을 다수 공개한다. 황상, 윤정기, 이청, 이강회 등 다산 정약용과 함께 꿈꾸었던 제자들의 미공개 유물을 통해 그들의 정신을 느끼고 체험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체험프로그램으로 다산과 제자가 함께 그린 <강진해안지도> 목판 탁본 체험과 아이들용 한자 교육을 위해 다산이 편찬한 2000글자 「아학편兒學編」스템프 체험, 그리고 ‘다산 실학마을 지도 그리기’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주요유물 소개 ~ 최초 공개 유물을 중심으로
1. 스승의 저술을 도우며 자신의 학문분야를 개척하다.
다산의 제자들은 책이 귀한 상황에서 고전과 선배·동료의 좋은 글을 베끼고 옮겨 적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충실히 메모하고 기록하여 총서를 엮어내었다. 자신의 전공분야를 개척해 나갔던 여정이었다.
또한 제자들이 스승의 저술 작업을 충실히 도왔다. 다산의 대표저술로 알려진 「목민심서」와 「흠흠신서」편찬의 과정을 제자들은 총서에 기록했다.
▶ 평생에 걸쳐 초서작업을 한 황상의 「치원총서巵園叢書」
황상은 ‘부지런히 하고 또 부지런히 하라’는 스승 다산의 가르침을 따라 평생 책을 베껴 적는 초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의 집에는 초서하여 쌓아둔 책이 많았는데 그 높이가 자신의 키를 넘길 정도였다고 한다. 초서의 내용은 경세학에 관한 것도 있고, 문학에 관해 옮겨 적은 것도 있다. 매일 베끼고 옮겨 적는 것이 버릇이 된 황상에 대해 주위 사람들은 개미집 같다거나 부적같다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 「목민심서」 편찬 과정을 기록한 「선암총서船菴叢書」
제자 중 손순의 책으로 추정된다. 제표지에 「선암총서船菴叢書」라고 적혀있으며 서문이나 발분이 없이 2권 1책이다. 본래 24책이었지만 1책만 남아 전한다. 이 책에 「목민심서」의 일부가 씌어 있는데 현재 완본(完本)의 「목민심서」와는 체제가 다르다. 「목민심서」편찬의 초기단계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 「흠흠신서」 편찬 과정을 돕다. 황경의 「양포총서襄圃叢書」
현재 15책이 전하는 「양포총서襄圃叢書」는 경세학, 문학, 역사 분야의 문적에서 주요 내용을 베끼거나 정리하여 놓은 책이다. 이 책에는 「흠흠신서」의 초고 일부가 기록되어 있는데 여러 경전에서 관련 사항을 조사 발췌한 부분이다. 현재의 「흠흠신서」와 체제가 다르며 자료 수집의 초기 단계에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2. 다산초당의 가르침 – 학자가 지켜야할 덕목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제자들은 세상에 유행하는 음란하고 기괴한 책들을 읽지 않고 자신의 덕을 기르고 수양서와 백성을 위하는 목민牧民에 관한 서적을 읽었다.
▶ 학자가 지켜야 할 덕목, 「거가사본居家四本」
다산 정약용이 잃어버렸다고 매우 안타까워한 책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효도·공경·화목에 관한 조항, 밭 갈고 길쌈하며 가축 기르는 법, 뜻을 세워 학문하며 악을 제거하고 선으로 나아가는 것, 책을 소장하거나 초록(抄錄)하는 일, 책을 즐기고 아끼는 것, 선을 베풀고 분노를 자제하는 것, 곤궁에 대처하는 것, 사욕을 막는 것 등을 책으로 엮은 수양서이다.
▶ 백성을 위해 목민을 관한 책을 읽으라, 「작비암일찬昨非庵日纂」
이 서첩은 명나라 정선鄭瑄이 지은 「작비암일찬(昨非庵日纂)」을 간추려 엮은 것이다. 다산이 목민서로 읽어야 할 책으로 지목한 것이다. 다산은 제자들에게 지금 세상에 횡횡하는 음란하거나 기괴한 책들을 읽지 말라고 하였다. 목민牧民에 관한 서적을 읽어 자신의 덕을 기르고 백성을 위하는 참다운 삶을 살라고 가르쳤고 제자들은 그 가르침을 따르고자 노력하였다.

3. 새로 발견된 다산학단의 문학 유산
▶ 초의 선사 의순의 시집, 「초의시고(艸衣詩藁)」
조선 후기의 승려 의순意恂(1786~1866)의 시집이다. 자는 중부(中孚)이며, 호는 초의(草衣), 당호는 일지암(一枝庵)이다. 다산의 지도를 받아 유학 경전 연구에도 힘을 썼고, 다산으로부터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차(茶)에 대한 감흥을 표현한 시 등을 수록하고 있으며 후일 홍석주·정약용(丁若鏞)·김정희(金正喜) 등과도 교유하였다.

4. 신분을 넘어 우의를 다진 <정황계첩丁黃契帖>
▶ 정씨와 황씨 양 집안의 유대를 기록한 <정황계첩>
「정황계첩」은 다산의 아들들인 정학연·정학유가 강진 제자 황상과 함께 두 집안이 대대로 우의를 지속하기를 다짐하며 계를 맺고 남긴 기록이다. 다산이 죽은 지 10년 후, 1845년 3월 스승의 기일(忌日)에 황상이 1,000리 길을 걸어 상경하였다. 이때 정씨와 황씨 양가의 자자손손 우의를 이어가도록 약조하며 정황계丁黃契를 맺는다.
이번 특별전에는 2개의 계첩을 전시한다. 하나는 황씨 가문에서 소장하여 보관하던 것으로, 황상의 이름이 연장자인 정학연의 이름보다 앞에 기록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씨 가문에서 소장하여 보관하던 것으로, 정학연의 이름이 앞에 나와 있다.
이처럼 이들 계첩은 두 집안의 만남처럼 170녀 년이 지나 실학박물관에서 한자리에 만나게 되었다. 학연·정학유 형제와 황상 사이에는 남북 천리로 편지와 시문이 오고갔으며, 정학연의 주선으로 황상과 추사의 교유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 다산과 강진 제자들의 문한, <가련유사迦蓮幽詞>
윤종창․윤종심․체경․초의․윤종삼 등 다산학단의 구성원들이 중심이 되어 시회詩會를 열고 이를 묶어 엮은 시집이다. 이들은 모두 다산의 다신계와 전등계 제자들이다. 책의 겉표지 제목은 ‘가련유사’, 내지의 제목은 ‘아회록雅會錄’으로 되어 있다. 1818년 겨울에 쓰인 윤종영의 서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다산이 초당을 떠나는 즈음에 쓴 것으로 보이며 스승이 해배되어 초당을 떠난 후 유대를 지속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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