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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비봉碑峰의 비석이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힌 김정희의〈북한산순수비 발문北漢山巡狩碑跋文〉
제작연도/ 조선후기
작가(출처)/ 김정희

김정희 초상(좌), 김정희의 〈북한산순수비 발문〉탁본(우)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북한산 정상에 있던 오래된 비석을 찾아간 것은 31세 때였습니다. 이전에 이 비석은 무학대사無學大師와 관련된 비석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816년 7월 어느 날 김정희는 친구인 김경연金敬淵과 함께 북한산에 있는 승가사僧伽寺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산봉우리 꼭대기의 비석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에 입각하여 비문에 새겨진 68자를 해독하였습니다. 그 다음해에도 김정희는 조인영趙寅永과 함께 올라가 비문을 해독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 비석이 신라 진흥왕眞興王이 새롭게 신라의 영토에 편입된 한강 지역을 돌아보고 세운 순수비였음을 밝혀냈습니다. 이때 추사의 기쁨은 어떠했을까요?

“이것은 신라 진흥대왕 순수비이다. 1816년[丙子] 7월 김정희金正喜와 김경연金敬淵이 와서 읽어보았다. 1817년[丁丑] 6월 8일 김정희와 조인영趙寅永이 와서 상세하게 살펴보았는데, 남아 있는 글자殘字가 68자였다.”

북한산순수비에는 진흥왕이 영토를 넓힌 내용과 북한산을 순수할 때 수행하였던 신하들의 관등 및 관직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문에는 1줄에 32자씩, 12줄에 모두 384개 글자가 해서체楷書體로 새겨져 있습니다. 신라 때의 기록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발견은 우리나라 금석학의 일대 성과로서 실사구시의 정신이 반영된 구체적인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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