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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수의 자주적인 개화사상을 모은 《환재집瓛齋集》
제작연도/ 조선후기
작가(출처)/ 박규수
박규수의 《환재집》
박규수朴珪壽(1807~1877)는 박지원朴趾源의 손자로, 개화기에 개국통상론開國通商論을 펼쳤습니다. 그는 할아버지가 세운 이용후생利用厚生의 학풍을 계승하여 개항開港을 통해 우리나라를 근대국가로 전환시키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두 차례 중국 사행 길을 다녀오면서 당시 청나라의 양무운동洋務運動을 직접 살펴보고, 세계 여러 나라에 문호를 개방하여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우리나라를 자주적으로 개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환재집》에 있는 기자정전箕子井田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김덕용론기전존의答金德容論箕田存疑〉에서는 토지개혁론의 근거였던 기자정전에 대해 비판하였으며, 지세에 대한 논의인 〈지세의명地勢儀銘〉에서는 세계 지리를 논하면서 중국 중심의 화이론華夷論을 비판하고 국제 질서 속에서 조선의 위상을 강조하였습니다. 환곡還穀의 폐단 시정을 위한 상소인 〈청설국정리환향소請設局整釐還餉疏〉는 1862년(철종13) 진주농민항쟁 때 작성한 것으로, 삼정三政 중에서도 환곡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전담 기구를 설치하자는 주장이 실려 있고, 〈자문咨文〉에는 서양 선박이 조선의 연안을 침입하는 것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김옥균金玉均(1851~1894)과 같은 젊은 양반자제들과 나누면서 이들에게 개화사상을 전파하여 훗날 개화파의 김옥균, 박영효朴泳孝, 김윤식金允植, 유길준兪吉濬 등이 그 문하에서 배출되었습니다. 그는 1875년 9월 일본이 운요호雲揚號 사건을 일으켜 수교를 강요해오자 오경석吳慶錫(1831~1879) 등과 함께 정부를 설득하여 조약을 체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자료는 조선 말기에 국가 개혁을 위한 그의 개화사상과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로 제자인 김윤식이 편집, 간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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